[충청매일] 사회보장이 확대되는 추세에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사망하거나, 생활고에 못 이겨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새해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광주의 한 주택에서는 다문화 부부의 안타까운 죽음이 발견됐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남편과 필리핀 출신 아내가 차디찬 방바닥에서 숨진 채 닷새만에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아내가 뇌출혈로 먼저 쓰러지자 거동이 어려운 남편이 이불을 덮어주려다 침대에서 떨어진 뒤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월 10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 수급비로 빠듯하게 생계를 유지해왔다.

앞서 지난 5일 경기 김포시에서는 남편과 별거하던 30대 여성과 60대 어머니, 8세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방 안에서는 마지막 수단을 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과, 경제적 어려움과 신병비관을 토로하는 유서가 발견됐다. 이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대상 등 긴급복지 지원 대상이 아니며, 복지 관련 상담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같이 일가족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연말 성탄절 이틀 전에는 1억원의 빚을 갚느라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던 대구의 40대 부부가 자녀 2명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11월 한달에만도 서울 성북구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경기 양주에서 50대 어머니와 4·6세 아들이, 인천에서 일가족 등 4명이 임의로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어린이 날에는 30대 부부가 2살과 4살 아이를 끌어안고 세상을 등지는 참담한 일도 발생했다.

1년 새 이 같은 유형의 일가족 극단적 선택 사건은 알려진 것만 20여건이다. 대부분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삶의 의지를 꺾은 경우로 추정되고 있다.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복지시스템을 한층 강화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앤다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하고, 긴급복지지원법을 새로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도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지급을 추진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약해 여전히 빈곤으로 인한 죽음의 행렬은 막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활고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주요 원인으로 제기돼 온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자격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정에서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지원요청을 망설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경제적 소외계층이 늘어나면서 극단적 선택이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촘촘한 복지망에 더해 빈곤층의 손을 잡아줄 공동체 구축이 시급하다. 모두의 무관심으로 이웃이 생명을 놓아 버리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

특히 자녀의 목숨을 함부로 해치는 행위는 큰 범죄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는 인식개선에도 힘을 쏟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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