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래 언제 떠나겠는가?”

“내일 아침나절이라도 서두르겠습니다.”

“상전객주들은 내가 단두리할 테니, 여각객주들은 자네가 맡아주게.”

“어르신, 심려 놓으셔요!”

봉화수가 다시 한 번 최풍원을 안심시켰다.

“자네, 날 만나 궂은일도 참 많이 했구만.”

갑자기 최풍원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소도 저를 거둬주는 주인을 위해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하는데, 사람이 염치를 안다면 당연합니다. 제가 어르신께 받은 은공이 태산일진데 어찌 그깟 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봉화수가 최풍원 앞에 한껏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요즘 시절이 어디 그러한가. 제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부모도 버리는 세상 아닌가? 내게는 자네가 태산보다 크다네!”

“과분한 말씀이옵니다. 그럼 저는 떠날 채비도 해야 하고 일어서겠습니다.”

봉화수가 나가자 최풍원은 다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최풍원이 처음 장삿일을 시작할 때는 큰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혼자만 잘살고 잘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혼자만의 누림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 일인가는 아버지의 탐욕으로 순식간에 집안이 몰락하는 것을 보며 알았고, 이후 살아남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며 뼈저리게 몸으로 체득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 세상을 살아내려면 얼마나 뼈를 깎는 고초를 겪어야하는 지도 절절하게 겪었다. 그럴 때 누구라도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면 그 돈으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었다.

그런데 멈춰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큰돈의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처음 행상을 시작할 때는 등짐이 하도 무거워 등짐만 벗어나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소를 사니 등짐은 면했지만 일이 늘어났다. 일이 늘어나다보니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 임방을 만들고 임방이 여각이 되고 객주들을 모아 도중회까지 만들게 되었다. 휘하에 여러 사람들이 있다 보니 그들과 함께 장사를 유지하려니 더 큰일을 벌여야했다. 그래서 북진에 장마당을 열고 상전을 만들고 나루터를 확장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으로부터 견제를 받게 되고 그를 해넘기지 못하면 내가 죽을 판이니 대항을 해야 했다. 뭐가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엔가 떠밀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우선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야 했다. 어쨌든 청풍도가와의 싸움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청풍도가와 북진여각 간의 상권 다툼이 아니더라도 김주태와 최풍원 사이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상대를 꺼꾸러뜨려야 했다. 청풍도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봉화수가 여각객주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자, 최풍원은 북진장터의 상전객주들을 불러 모았다.

“객주님들, 오늘부터 우리는 청풍도가와 싸움을 시작합니다. 여러 객주들께서도 이제껏 겪어왔지만 청풍도가를 꺾지 않고는 우리가 장사를 편히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청풍장과 도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먼 고장의 물산들을 받아다 충주나 경상들에게 넘기는 장사를 해왔소이다. 그러니 청풍도가에서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압력을 가해오지 않았소이다. 그러나 이젠 다르오. 우리 북진에도 장마당과 상전을 새로 만들었소. 청풍장으로 가던 청풍관내 많은 장꾼들이 우리 북진장으로 몰려들 것이오. 그러면 반드시 청풍도가에서 우리를 죽이려 할 것이오. 그것뿐만 아니라 이전처럼 청풍도가의 눈치를 살피며 관내 먼 곳을 다니며 하는 장사만으로 우리 장과 상전을 유지 할 수는 없소이다. 가까운 청풍장과 도가 상권을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소이다. 그것이 청풍도가와 싸움을 시작하는 이유요! 또 북진나루도 확장하여 경강선들이 우리와 직접 거래를 하고 있소. 청풍도가 역시 경상들로부터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터에 그들이 우리 북진으로 뱃머리를 돌려 물건을 빼앗기는 것을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게 분명하지 않소? 어쩌면 이미 청풍도가에서 우리 북진도중을 죽이려고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니 우리가 살기위해서 당장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오!”

최풍원이 상전객주들을 선동했다.

“대행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미리 지래짐작해 왜 분란을 일으킨단 말이오?”

잡화전 객주 장순갑이 최풍원의 의견에 반대를 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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