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홍명희 소설 ‘임꺽정’에는, 꺽정이가 서울로 잠입하여 활동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중에 숨어사는 생활을 지겨워하는 꺽정이를 서림이가 기생방으로 안내하는데 거기서 다른 패들과 싸움이 붙습니다. 물론 이런 설정은 홍명희의 상상력이지만, 당시의 풍속을 소설로 정확히 복원한 모범사례라고 할 만한 명장면입니다.

기생은 조선시대의 한 신분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문제는 관에 소속된 기생들만이 아니라, 국가 행사에 동원할 때만 쓰는, 요즘으로 치면 알바 기생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봉급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굶어죽게 놔둘 수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기생들에게 영업을 허락합니다. 조선시대의 기생방은 그런 영업이 가능했던, 국가에서 묵인했던 상술의 일종이었습니다.

이런 곳에는 반드시 기생을 도와주는 존재가 있고, 그들과 어울리는 짝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뺀질거리는 사람을 ‘기생오라비’라고 하는데, 이런 말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 말입니다. 과연 그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생보다 더 먼저 사라졌습니다.

제가 지난 25년간 해방 전후에 집궁한 분들을 한 30여 분 남짓 취재하면서 확실히 느낀 것이 바로 이들의 존재였습니다. 특별한 직업 없이 활쏘기를 하면서 풍류를 즐기는 계층이 분명히 있었고,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법도와 원칙이 있었으며, 그런 자신에 대해 독특한 자부심을 지녔습니다. 한량은 무과 준비생이라고 했는데, 활터의 원로 구사들이 바로 그들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이미 연세 90을 넘겨서 지금은 대부분 작고하신 분들의 얘기입니다. 그 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기생과 함께 조선 후기의 뒷골목 문화를 담당했던 한 계층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활 쏘는 사람을 한량이라고 하는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 존재는 해방 전후까지 활터에서 분명히 확인됩니다.

선호중이라는 게 있습니다. 활터에서는 과녁을 맞히면 획창이라는 것을 합니다. 소리꾼들이 창을 하는 것입니다. 5시 중에서 3시째로 접어들면 지화자를 신나게 부릅니다. 그런데 1~4시를 모두 못 맞춘 한량이 마지막 화살을 내밀고 ‘선호중’을 요구합니다. 선호중은 호중을 먼저 해달라는 뜻으로, 마지막 발이 남았으니 쏘기 전에 맞은 것으로 간주하고 한바탕 소리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리꾼은 받은 화살을 비녀처럼 꽂고 한바탕 소리를 합니다. 돌려받은 화살로 막시를 쏘는데, 맞히면 한 번 더 지화자를 부르고, 만약에 못 맞히면 바닥에 엎드려 전통으로 볼기짝을 맞습니다. 이때 소리꾼이 10장가를 부르며 때리는 시늉을 합니다. 10장가는 춘향가에서 춘향이가 매를 맞는 대목으로 ‘집장가’라고도 합니다. 활터에서 5발 중 마지막으로 쏘는 화살은 ‘한량대’, 또는 ‘지화자대’라고 하는데, 이 막시를 소중히 여기는 한량들의 풍속입니다.(‘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이런 놀이를 보면 한량과 기생의 관계가 확인됩니다. 기생의 짝은 한량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활터에는 이런 풍속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80노인들을 제가 20여 년 전에 만나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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