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빈 배가?”

“빈 배에 우리 물산을 먼저 실어놓고 곡물배와 맞바꾸기를 하자고 할 수도 있잖겠습니까?”

“그래도 쓰레기 곡물 섬을 알고 우리가 거래를 취소하면 그만 아닌가?”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면 우리 특산물은 자기들 빈 배에 실어놓고 쓰레기 배를 강물 깊숙이 침몰시켜 증거를 없앨 수 있잖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최풍원도 그래야만 이제까지 북진난장에서 벌어졌던 여러 정황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최풍원은 이번 기회에 경강상인들에게 단단히 물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장근과 송만중 쪽으로 미끼를 던졌다. 북진여각에 곡물이 완전히 고갈되어 이젠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는 소문이었다. 그러자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강장근이 직접 북진여각으로 찾아왔다.

“우리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소! 그러니 당장 거래를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물산을 일시에 풀어 당신 목줄을 끊어버릴거요!”

강장근이 이젠 대놓고 협박을 했다.

“여보시오, 강 선주 아무리 애비 에미를 속이는 장사라도 너무한 것 아니오?”

“난, 그런 것 모르오!”

“지금 우리 여각에는 한양에서 없어서 못 파는 특산물들이 그득하게 쌓여 있소. 우리와 거래하던 경상들 배만 올라오면 지금 강 선주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물량에 흔들릴 북진여각이 아니오.”

최풍원이 유필주를 내세워 강장근의 협박을 벗어나려고 했다.

“유필주를 말하는 것이오? 유 선주는 한동안 북진에 올라오지 못 할 것이오!”

강장근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유필주는 지금 포도청에 잡혀있을 것이오.”

“그가 무슨 죄를 졌소?”

“운반하던 세곡을 포탈하다 발각되었다고 하더이다.”

유필주가 정말로 나라의 세곡을 포탈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최풍원의 생각에는 강장근이 김판규 대감의 세도를 등에 업고 야료를 부린 것이 분명했다.

“강 선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최풍원이 낙심하여 만사가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당장 계약을 합시다!”

“물산과 물산을 바꾸는 일인데 계약이 무슨 필요가 있소?”

“아니요, 나중에 딴 말이 없도록 분명하게 하는 것이 좋겠소!”

강장근이 미리 준비해온 문건을 최풍원 앞에 내놓았다. 문건에는 강장근의 배에 실려있는 각종 잡화물과 대곡전석 이천 섬의 물목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강장근이 그 문건에 최풍원의 수결을 요구했다.

“강 선주, 우리가 건네야 할 특산품 물목은 종류가 너무 많아 지금 다 적을 수가 없소. 그러니 내일 아침부터 우리 특산품을 강 선주의 배에 먼저 실어줄 테니 선적이 끝나자마자 배에서 수결하는 것이 어떻겠소?”

“좋소! 그럼 내일 식전부터 선적을 해주시오. 배는 우리가 나루터에 대놓겠소!”

강장근이 거들먹거리며 북진여각을 나갔다.

이튿날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북진나루에는 강장근이 대놓은 배에 특산품을 싣느라 부산했다. 한동안 침잠해있던 나루터에 오랜만에 짐을 부리는 담꾼들로 북적이자 난장이 살아난 것처럼 활기찼다. 선적은 꼬박 사흘이 걸렸다.

“자, 수결을 하시오!”

강장근이 문건을 내밀었다.

“강 선주도 우리 특산품 물목에 수결을 해주시오?”

최풍원도 물목을 문건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상대의 문건에 서로 수결을 했다.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곡물을 실은 우리 배는 내일 아침에 나루터에 접안해 주겠소!”

강장근이 강 한가운데 정박해 있는 배들을 가리켰다.

“좋소이다!”

최풍원이 흔쾌히 말했다.

그날, 밤이 이슥해지자 특산품을 실은 강장근의 배들이 닻을 올리고 은밀하게 항해를 준비했다. 그리고는 강 하류로 소리를 죽이며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장근의 배들이 북진나루를 벗어나 강어귀를 돌아 사라졌다. 때를 같이하여 강 가운데 정박해 있던 배들의 갑판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들은 깜깜한 강물에 뛰어들어 연신 물 속으로 자맥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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