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의심도 많기는…….”

강장근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봉화수에게 말했다.

“여기 곡물은 모두 몇 섬이오?”

“대곡전석으로 삼백 섬이오!”

“그럼 나머진?”

“저기 배에 실려있소!”

강장근이가 강 가운데 정박해 있는 쓰레기를 실은 배들을 가리켰다.

“그럼 저것들도 확인을 해봐야겠소!”

“여기 봤으면 됐지, 배까지 건너가 확인할 게 뭐가 있소? 물건을 어떻게 선적할까 그것이나 의논합시다!”

강장근이 펄쩍 뛰며 말꼬리를 돌렸다.

“그건 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 돌아가 대행수님과 상의를 해서 알려주겠소.”

봉화수가 북진여각으로 돌아왔다.

“강장근이가 거래를 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자기들이 싣고 온 곡물 이천 섬과 우리 특산품과 맞바꾸자고 하더이다.”

“그놈들 김판규 대감 비호 아래 팔도 향시나 난장을 다니며 투식한 곡물로 지방 장사꾼들을 등쳐먹는 놈들이라네. 그러니 이놈들을 역으로 잘 이용해 본때를 보여줘야겠네!”

이미 최풍원이 강장근의 뒷조사를 끝낸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가 강장근 배로 가서 곡물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얼마나 있던가?”

“강장근이 배에는 한양에서 싣고 온 잡화가 대부분이었고, 쌀이 삼백 섬 실려 있었습니다. 나머지도 확인하자고 했더니 펄쩍 뛰더이다.”

“그랬겠지. 쓰레기를 실은 배니.”

“대행수님, 어떻게 할까요?”

“자넨, 뭐 좋은 방안이 있는가?”

“일단 잡화와 곡물 삼백 섬은 확실하니 그것 먼저 거래한 후, 곳간을 정리해야하니 나머지는 차후에 하자고 하면 어떨까 하는 데요?”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최풍원도 동의를 했다.

북진여각으로서도 지금 당장 곡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강장근 선단 또한 벌써 여러 날째 제 살 파먹기식 장사를 했으니 출혈이 막대했을 터였다. 그러나 최풍원이 뜻한 대로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장근은 번거롭게 일을 벌이지 말고 한꺼번에 거래를 하자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경강선에 실려 있는 것이 쓰레기임을 알면서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인 지금 순간을 잘 극복해야 했다. 최풍원으로서는 도무지 이해 못할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강장근이 곡물과 특산품을 맞바꿔 내려가려고 했다면 무엇 때문에 청풍부사 이현로를 찾아가고, 이제껏 난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화수야, 물개를 불러 송만중이가 몰고 온 배들의 바닥을 샅샅이 살펴보라고 하거라.”

“배 밑바닥을요?”

봉화수가 최풍원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되물었다.

“행수어르신, 빈 배를 빼놓고 쓰레기 곡물 섬을 실은 모든 배들 밑창에는 서너 개씩 구멍이 나있고 그 구멍에는 말뚝이 박혀있구먼유.”

송만중이 몰고 온 배들의 밑창을 살펴보고 온 물개가 상황을 설명했다. 전형적인 ‘고패’ 수법이었다. 고패는 세곡이나 한양 양반들의 도지를 받아 가로채기 위해 경강선들이 쓰는 부정한 술책이었다. 경강선들은 곡물을 운반해주고 그 대가로 일정 부분의 선가를 받았다.

그러나 선가에 만족하지 못하고 운송 도중에 배를 일부러 침몰시켜 곡물을 통째 해먹는 수법이었다. 일테면 온전한 곡물은 미리 빼돌려 다른 곳에 감춰두고 배에는 쓰지도 못하는 허접한 물건들로 채우고 운송 도중 깊은 강물이나 여울에 일부러  침몰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럴 경우 세곡 운반선이 침몰하면 그 세곡을 냈던 관아에서 정상미와 바꿔주도록 되어 있었다. 경강상인들은 나라의 이런 운송지침을 악용하여 물목 장부를 날조하여 다시 곡물을 받아냄으로써 농민과 관아에 이중의 고통을 입혔다. 착복하는 부정한 방법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쁜 수법이었다.

그러나 강장근은 세곡이 아니라 북진여각과 거래를 하기 위해 싣고 온 곡물들이었다. 그런 곡물을 쓰레기로 위장해 놓았다면 거래 과정에서 몇 섬만 열어봐도 곧바로 들통이 날 일이었다. 송만중이의 행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름쟁이처럼 약은 송만중이가 어떤 대가도 없이 장장근과 위험한 결탁을 할 리가 없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대행수님, 저 놈들이 우리 특산물과 곡물을 바꾸고 난 다음 쓰레기 배를 가라앉히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고패 술수는 워낙에 다양해 그 수를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봉화수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뭔가가 있었다.

“자기들 배를 침몰시키면 저들도 우리와 바꾼 특산물을 가져가지 못할게 아니냐?”

“저 빈 배들이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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