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혐오: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익명의 여성들
(3) 맥락 없는 죽음의 맥락

1920년 중반 쾌락+살해 의미의 명사 ‘루스트모르트’ 보편적 사용
홀로 생계꾸려가는 여성 범죄 표적으로…현실 반영 작품 줄이어
그로츠 작품에선 여성 시신을 일상 기물과 동일한 사물로 취급
가해자 잔인한 본성 더욱 강조…남성 살해자에 대한 회의 느껴
남성들 무관심한 행동은 살해 장면의 끔찍함 더욱 돋보이게 해

게오르게 그로츠 ‘악커슈트라세에서의 성적 살해’ 1916.(왼쪽) 게오르게 그로츠 ‘그것이 끝난 다음,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1917.
게오르게 그로츠 ‘악커슈트라세에서의 성적 살해’ 1916.(왼쪽) 게오르게 그로츠 ‘그것이 끝난 다음,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1917.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전쟁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현재까지도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벌어지지 않고 하지만 잦은 전쟁의 휴지기가 길었던 1차 대전 이전의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새 세기 1900년을 맞아 장밋빛 희망과 더불어 전쟁이라는 대사건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은 이들도 있었다. 1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타국으로 망명한 이들도 있었지만, 젊은 남성들 가운데는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진 입대한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870년의 보불전쟁이 독일의 통일을 가져다준 것처럼 이 전쟁이 독일인들에게 더 큰 권리와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고,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조차 전쟁을 영웅주의로의 초대, 퇴폐주의로부터의 구체책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이들은 세계대전의 수렁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전투는 서부전선의 길고 지루한 교착 상태로 상징되는 지리멸렬한 살육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고, 이러한 경험은 독일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게다가 독일은 1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승전국과의 조약을 통해 도저히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전쟁배상금을 물게 됐다. 그 와중에 태어난 시대가 바이마르 공화국이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1차대전 패전 후, 그리고 나치가 집권하기 전까지 명맥을 유지했고, 놀랍게도 문화적으로는 자유를 구가해 성취가 대단했으며, 이때 발의된 바이마르 헌법이 세계의 법체계에 영향을 미쳤던 만큼, ‘황금의 20년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 살해의 모티프가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른바 성적 살해의 주제는 미술 뿐 아니라 문학작품들 속에서도 빈출했는데, 이를 정의하기 위해 루스트모르트(Lustmord)라는 용어가 사용다. 쾌락(Lust)와 살해(Mord)라는 의미의 명사가 결합된 루스트모르트는 본래의 심리학과 범죄학의 분야에서 1880년부터 사용되던 용어로 여성이 욕망(Wollst)과 잔임함(Grausamkeit)의 특수한 결합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상을 의미하였고, 같은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인 ‘여성 살해(Frauenmord)'와 함께 사용되다가 1920년대 중반이 지나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독일어 사전에도 포함됐다. 이 주제를 그렸던 미술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대부분 루스트모르트라는 제목으로 명명했으므로 욕망과 결합된 여성 살해의 주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살해는 실제로 거리와 실내를 가리지 않고 빈발했다. 전쟁 통에 생계에 내몰린 여성들이 도시의 유흥 문화 속에서 쉽게 매춘부로 전락했고, 이들은 쉬운 살인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전달하는 매체로 신문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대도시 베를린에서만 매주 아흔 세종의 다양한 신문이 발간됐다. 매춘부의 증가와 더불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라는 새로운 범죄 형태에 대해, 당시의 신문들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판매의 경쟁력을 얻기 위해 사건의 선정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훼손된 여성 시신의 자세가 가지는 선정성을 부각시키는 등의 행태와 추측성 삽화 등은 살해당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흥미를 끌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었다. 살해당한 여성들은 도시 빈민이거나 매춘부였으며, 도시의 어두운 거리를 홀로 지나가거나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성들이 그 대상이 됐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여성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며 그러한 현실을 미술가들이 반영한 작품들이 이어졌다. 작품 속 세계는 현실보다 덜 끔찍하기도, 더 끔찍하기도 했다.

게오르게 그로츠(George Grosz)의 ‘악커슈트라세에서의 성적 살해’는 실내에서 일어난 여성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침애 위에서 살해된 여성의 머리 부분이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는 대신 도기가 놓여 있는데, 살해자로 보이는 남성은 멜빵이 흘러내린 차림으로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다. 살해자와 피살자의 모습 이외에 이 작품에서 그로츠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방안의 기물들이다. 살해된 여성의 발치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축음기인데 이는 당시 부르주아들이 즐기던 고급스러운 취미를 연상시킨다. 잘려나가고 없는 여성의 머리 족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술병과 술잔 이외에도 탁상시계, 그리고 막 풀어놓은 듯이 보이는 손목시계, 답뱃갑 등이 있는데 이도 역시 부르주아의 소품들로 보이며, 실내를 가로지르는 파티션 위에는 남성 부르주아의 복장이 정장 상의와 지팡이가 걸려 있어서 살해자의 신분들 알려 주고 잇다. 이러한 실재의 기물들은 취향과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대단히 일상적으로 어지럽게 놓여 있어서 머리가 잘려나간 여성의 무참한 상태를 더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상의 기물들과 손을 씻는 인물은 살해당한 여성에 대한 냉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들로 보인다. 사실상 살해의 장면과 관계 없는 남성의 물건들에 대한 정교한 배치는 살해당한 여성의 시신이 인간이라기보다는 남성이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과 같은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이 끝난 다음, 그들은 카드 놀이를 했다’에서는 이미 살해가 끝난 후 카드놀이에 열중해 있는 세 남성을 그리고 있다. 이 장면에서 난로와 세면대, 침대, 장롱, 필라멘트 전등, 벽에 걸린 옷과 모자, 선반에 걸린 수건, 바닥에 있는 살해의 도구인 도끼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는 반면, 시신은 자세히 보아야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실내의 장면에서 시신은 왼편 남성의 의자 일부처럼 방치되어 있다. 왼편에 앉아있는 남성이 앉아 있는 의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츠를 신은 여성의 다리가 삐져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여성의 상반신은 화면 왼쪽 귀퉁이에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다. 시신을 깔고 앉아 있는 이 장면에서도 여성은 일상 기물과 동일하게 사물처럼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행 후에 남성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시신을 치우지도 않은 채 말이다. 이러한 구성은 철저하게 남성의 만족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고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사물처럼 버려진 존재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게오르게 그로츠의 성적 살해 주제의 작품에서 살해된 여성은 대부분 이렇게 토막나고 훼손된 시신으로 보인다. 살해된 이의 신체가 확실히 절단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은 가해자의 잔인한 본성을 더욱 강조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악행을 저지른 남성 살해자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한다. 그로츠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남성들의 무관심한 행동은 살해 장면의 끔찍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과거 미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살해와 납치 등은 이미 많이 다루어졌다. 그런데 이 시기 독일의 성적 살해, 즉 루스트모르트 주제의 작품들이 이전의 작품들과 너무도 달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의 기법이나 형상 구성의 방식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여성들의 죽음이 ‘맥락 없는 죽음’이라는 점일 것이다. 죽어야 할 이유, 전후의 장대한 스토리, 죽음의 의미, 이러한 맥락이 제거된 익명의 죽음, 아무도 기억하거나 처리하지 않는 죽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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