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다사다난 했던 기해(己亥)년 한 해도 어느덧 끝자락에 와있다. 집 앞 공원에는 곱게 물든 단풍잎이 찬 바람을 못이겨 한잎 두잎 떨어지고 있다. 그 낙엽을 밟는 바스락 소리가 영혼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나뭇잎이 자라서 낙엽이 되기까지 한해를 되 돌아보며 인생도 낙엽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노화의 길을 갈 수는 없을까. 나 홀로 지긋이 눈을감고 깊은 묵상(想)에 잠겨본다.

이른 봄 따사로운 햇살에 새싹이 눈 비비고 움터 가느다란 가지에 노란색을 띤 아기 병아리처럼 태어났다. 봄날을 지나면서 봄비가 내렸다. 그래도 잎은 무럭무럭 자라 가지마다 맺은 열매들을 감싸줬다.

봄, 여름, 가을 할 일을 다 마치고 붉게 익고 영근 열매들이 주인의 손길에 보내지면서 한해를 수고한 나뭇잎은 붉은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다. 살아온 세월에 고단함과 시련을 뒤로하고 생의 마지막 향연을 꽃피우는 단풍이 아니던가.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다움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찬 바람이 불어와 떨어지는 운명앞에서도 낙엽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날개도 없는 것이 한잎 두잎 빙빙 돌아 닐아가 쌓이네.’ 그래도 그 위를 밟고 지나는 발길이 한복입은 여인의 옷자락 스치는 느낌이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낙엽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게 보인다. 그 무엇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예쁘게 보인다. 인생도 붉은 낙엽의 일생처럼 살다가 아름답게 생을 마쳤으면 얼마나 좋을까.

산은 수목이 울창해야 강토가 풍요로워진다. 산새들이 울고 꽃이 피고 벌나비가 찾아든다. 찬서리에 떨어지는 낙엽이 쌓여 산천초목을 덮어주는 이불이되고, 썩어서는 거름이되니 재생의 희망을 꿈 꾸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던가.

낙엽은 썩어서도 화분 흙에는 반드시 필요한 부엽토(腐葉土)로 쓰인다. 공기 유통이 좋고 보습력이 높아 굳어지기 쉬운 화분 흙에 탄력을 준다. 매년 봄이오면 이것을 구하려 아내와 같이 먼 산을 찾아간다. 산골짜기에 쌓인 낙엽을 해치고 그밑에 까맣게 썩은 부엽토를 자루에 담아다 분갈이에 쓰면 분 식물에는 보약이 따로 없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 뜰앞 정원에 낙엽을 밟으면 푸른 잎 우거진 젊은 날을 그리며 마주치는 현실을 바라본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을 숨기고, 탐욕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갈등과 분열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마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면 서로돕고 사는 나라 사랑의 협치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낙엽의 일생은 말없는 자연 이지만 아름다운 천사와 같다. 그런 낙엽이 한잎 떨어지면 또 한입 계속 떨어지는 것은 이제 기력이 쇄진해 버틸 수 없는 노화(老化)의 슬픈 사연을 누가 알까.

나뭇잎은 생을 다하고 떨어지는 운명이지만 한 평생을 햇빛 받아 자양(自養)액을 만들어 열매를 길러주고 모체(母體)를 떠날 때는 이층(離層)이 생겨나 추풍낙엽이 된다. 그것이 자연의 오묘한 섭리(攝理)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오색 찬란한 단풍꽃을 피운다. 어찌 지난날의 그 정성을 잊을 수가 있을까. 낙옆이 떨어저 간 나무밑! 아무도 찾지않는 쓸쓸한 곳! 앙상한 나뭇가지만 찬 바람에 흔들거린다. 인생의 고독이 밀려드는 황혼길에서 한 해의 생을 살았던 붉은 낙엽의 일생처럼, 힘껏 마음껏 받들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한 줌의 재가 되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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