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인근에서 생산되는 무명은 질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무명에 비해 거래되는 가격도 월등 높았다. 그래서 북진여각에서도 높은 값을 쳐주고 인근의 무명들을 도거리 해 놓은 실정이었다. 북진여각은 경강상인들에게 이곳의 특산물을 내주고 대신 곡물과 소금과 어물을 공급받고 그것을 장마당이나 객주들, 보부상들을 통해 산지의 특산품들과 교환하며 장사를 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북진여각을 운영하는 주된 축은 곡물과 면포였다. 명목화폐인 엽전이 쓰이고는 있었지만 조선의 상거래에서는 아직도 상품화폐인 쌀과 베가 기준이 되어 통용이 되고 있었다. 쌀과 베는 교환조건의 척도였다. 북진여각 역시 엽전과 물품을 함께 사용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물산과 물산을 맞바꿈하는 거래가 통례였다. 이런 상황에서 쌀과 베 값이 폭락한다면 북진여각으로서는 눈을 번하게 뜬 채 전 재산의 절반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위기였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난장을 철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진여각 존립 자체까지 위험했다.

“대행수 어른, 어쩌지요?”

봉화수가 근심이 되어 물었다.

“으흠…….”

최풍원이라고 방책이 있을 리 없었다.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경상들이 저렇게 물건 값을 폭락시키는 연유가 뭘까요?”

그것도 이상했다. 장사꾼이라면 물산을 처분해서 이득을 남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값싼 물건이라 해도 본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판매를 한다니 그것이 의심스럽기는 했다.

“화수야, 장터 각 곡물전에 기별을 해서 내일부터 모두 철시를 하라고 이르거라. 그리고 일단 여각의 곳간 문을 닫고 방출을 중단하거라.”

최풍원은 강장근 선단의 경강상인들이 하는 행위에 대해 일체의 대거리를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되면 난장의 주도권을 저들이 쥐게 될 텐데요?”

봉화수가 걱정이 되어 물었지만 최풍원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북진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고 물산은 곡물이었다. 청푼 인근 고을민들은 장마당에 나오는 곡물을 구하기 위해 집안에 꽁꽁 숨겨놓았던 귀한 물건들을 들고 장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북진여각에서 풀어놓은 값싼 곡물들과 자신들의 물건을 바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북진에서 난장을 튼 지 한 달여가 넘는 동안 계속해서 방출해왔고 강장근 선단과 싸우기 위해 수급조절을 않고 마구 방출을 한 통에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곡물도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창고에는 쌀을 팔아 바꾸어놓은 특산물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지만 경강상인들과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깜깜한 밤길에 비단옷 입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귀한 물건도 작자가 없으면 소용없었다. 북진에서 필요한 것은 당장 먹어야 하는 곡물이지 기호품인 특산물이 아니었다. 그런 특산물은 한양의 시전이나 한가한 양반님네들이나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곡물을 배 가득하게 싣고 와 북진여각의 특산품과 바꿔가야 할 강장근 선단이 거래는커녕 외려 북진난장을 흐려놓고 있으니 최풍원으로서는 진퇴양난이었다.

이튿날부터 난장의 곡물전이 모두 철시를 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북적거리던 장마당이 하루아침에 썰렁해졌다. 도중회의 객주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선다며 난리였다. 난장에 왔던 장꾼들이 강장근 경강선단이 물산을 풀어놓은 나루터로 발길을 돌리자 강가에는 또 다른 난장이 펼쳐졌다. 강장근 선단은 계속해서 물산들을 절반 가격에 풀었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강가 난장에는 장마철 강물 불어나듯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건을 사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반대로 북진난장이 열리는 장마당은 잔치 끝난 집처럼 횡덩그레하기 그지없었다. 북진여각에서 장사를 포기하자 강장근 선단에서는 슬그머니 물건 값을 제 자리로 올렸다.

“화수야, 다시 곳간을 열고 장마당에 곡물을 반값으로 풀거라!”

최풍원의 지시에 따라 장마당의 곡물전이 일시에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강장근 선단에서도 다시 곡물 값을 내렸다. 최풍원이 다시 철시를 지시했다. 장꾼들도 다시 강가 난장으로 몰려갔다. 최풍원은 철시와 개시를 반복하며 강장근 선단의 물산을 고갈시키려는 술책을 폈다. 그렇게 최풍원과 강장근의 줄다리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면서도 문제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대행수 어르신, 요새 지소거리에 황강 놈들이 꼴방쥐 드나들 듯하며 겨우내 만들어 놓은 종이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껄떡대고 있습니다.”

서창객주 황칠규가 북진여각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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