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한자말 생(生)은 ‘생기다, 태어나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의 존재 이유와 목적, 즉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예컨대, 유생(儒生)은 ‘유학자로 태어나서 그렇게 살다가 갈 사람’을 뜻합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은 배우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학생(student)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조선시대에 학생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벼슬로 나아가면 출신이라고 하고, 죽어서 지방에도 벼슬 이름을 붙입니다.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은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씁니다. 그러니 ‘앞서서 이끈다.’는 뜻의 ‘선생’이란 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인지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벼슬 하지 않은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가장 크고 영광된 말이 선생(先生)입니다. 생(生)은 이런 깊은 뜻이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 기생에도 ‘생’ 붙었네요. 뜻밖입니다. 조선시대의 가장 천한 8계층 중 하나인 기녀에게 ‘생’이 붙었다니요? 조선은 남자 중심의 사회이지만, 여자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연을 담당한 여성들의 일입니다. 남자로 대역을 쓸 수 없는 기예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담당한 사람들을 조선은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한 것이며, 그 주역이 바로 기생입니다. 이들은 조선 사회를 떠받치는 엄연한 한 계층이자 신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한자로 똑같이 ‘妓生’이라고 쓰고 우리와는 다르게 읽습니다. ‘게이샤’라고 부릅니다. 가부키 같은 일본 전통 예술을 담당한 게이샤들은 일본 사회에서 자신들이 전통 예술의 계승자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또 사람들이 그렇게 대해줍니다.

똑같은 기생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왜 이렇게 다를까요? 그것은 국가의 지속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국가가 그들의 신분을 인정했지만, 조선이 망하면서 그들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사라집니다. 결국 그들 스스로 생존을 찾아 나서면서 신분의 이동과 계층의 몰락을 겪게 됩니다.

기생은 작부나 창녀와 다릅니다. 작부나 창녀는 손님 옆에서 술 쳐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물론 몸을 팔기도 합니다. 기생은 몸이 아니라 기예를 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와 창 두 영역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고, 서로 넘나들지 않았습니다. ‘소태산 평전’에 보면 일본인들이 모욕을 줬다고 기생 몇 명이 양잿물을 먹고 자살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기생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자신을 지켜주던 국가가 망하자 기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창과 결합하는 형태로 갑니다. 가와무라 미나토의 ‘말하는 꽃 기생’이라는 책에서 이런 상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저러고, ‘기생’은 엄연히 우리말인데, 이를 살려 써야 할지 어떨지도 걱정이 됩니다. 기생의 후예들이 기생이라는 말을 저버린 상태이니 말입니다. 조선을 구성하는 한 사회 계층이 이토록 증발한 데는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있습니다. 적어도 기생을 창녀와 혼동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생은 조선의 전문 아티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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