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보릿고개에 접어들며 북진나루로 들어오는 경강선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난장의 각종 산물들을 수급해 주던 경강상인들의 발길도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경강선들이 싣고 오는 물산들이 끊어진다면 북진의 물가는 앙등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꾼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따라서 장사꾼들도 발길을 돌려 난장은 시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풍원은 모든 경강선들이 막바지에 다다른 세곡을 한양의 경창으로 실어 나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행수 큰일 났소! 곡물 값도 소금 값도 폭락을 했소!”

“경상들한테 매입한 가격의 반도 안 되는 값에 마구 풀리고 있소!”

“이대로 며칠만 지나도 우린 망하게 생겼소!”

북진여각의 객주들과 보부상들이 달려와 다급함을 호소했다.

“장마당에 모든 물건값이 곤두박질을 치고 있답니다.”

봉화수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장마당 상황을 고했다.

“갑자기 폭락한 이유가 뭔가?”

“나루에 정박해 있던 경강선들이 모든 물산들을 일시에 풀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 북진 안팎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던 동몽회원들이 말하기를 ‘나루터에 벌써 여러 날째 정박해 있으면서 물산을 부리지 않는 경강선들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최풍원은 봉화수에게 그 배에 실린 짐이 무엇인지 누가 선주인지를 주의 깊게 살필 것을 주문했었다.

“그놈들을 한번 만나봐야겠구나.”

최풍원이 동몽회 회원들을 거느리고 나루터로 경강상인들을 만나러 내려갔다. 그들은 나루터에 물산들을 무더기로 풀어놓고 장꾼들과 직거래를 하고 있었다.

“지금 당신들이 하는 모든 상행위는 불법이오. 당장 걷어치우시오!”

“당신이 누군데 남의 장사를 치우라 마라 하시오?”

“난, 북진여각 최풍원이오!”

“난 한양에서 온 강장근이오. 내 물건 가지고 내 맘대로 파는 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래라 저래라요?”

“북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상행위는 우리 여각을 통해야만 하오.”

“한양에서도 금난전권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그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장사 얘기를 하는 것이오?”

최풍원의 말에 강장근은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비웃을 뿐이었다.

강장근이 말하는 금난전권은 조선 건국 초부터 육주비전과 시전에 난전을 규제할 수 있도록 부여한 특권을 말하는 것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쓰러뜨린 후 개성을 떠나 한양으로 천도를 했다. 천도의 배경에는 여러 사유가 있었겠지만 한양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행정중심도시였다. 따라서 대궐과 육조를 비롯한 한양은 대규모 물량의 물품들이 필요했다. 이를 조달해주는 의무를 진 곳이 선전·면포전·면주전·지전·저포전·내외 어물전 등 여섯 개 전을 통틀어 육주비전 혹은 육의전이라 불렀다. 육의전의 상인들은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납하는 대신 이들에게 특정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과 난전을 금지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며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상인들의 인구도 급속하게 불어났다. 따라서 육의전뿐만 아니라 커다란 장마당이 한양의 이곳저곳에 생겨났다. 그러자 육의전 상인들은 장사를 하는 일보다도 새로 생겨나는 장마당을 돌며 백성들의 매매행위를 통제했다. 장에 나온 백성들은 사소한 물품 하나도 마음대로 사고팔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제한하고 장세를 부과하는 육의전 상인들의 횡포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폐해가 극심해지자 정조 연간에 실학자 채제공의 건의를 받아들여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시전에서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통공정책을 실시하였다. 이것이 갑인통공이었다. 갑인통공 이후  한양의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장터에서 백성들은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루아침에 불합리한 관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시전 얘기지 육의전도 금난전권이 철폐됐단 말이오?”

최풍원이 금난전권이 폐지된 것은 한양의 일일 뿐 북진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내세웠다.

“그럼 북진난장이 육의전이란 말이오?”

강장근이라는 경강상인도 지지 않고 맞섰다.

“그렇소! 우린 청풍관아에 공납을 하며 대신 난장의 전매권을 얻었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