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혐오: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익명의 여성들
(2) 여성 혐오와 여성 살해
20세기 초반 여성혐오 정서 절정…독일 중심 수많은 작품 제작
살해 대상은 매춘부…새로운 생활상이 가져온 퇴락·부패 상징
오토 딕스 ‘성적 살해(자화상)’서 작가 자신이 살해자로 등장
여성 신체를 끔찍하게 난도질하고 광분하는 인물로 묘사
1926년 매춘부 주제 작품 사회적 논란 일으켜 법정에 서기도

오토 딕스 ‘성적 살해’ 1922년.(왼쪽)오토 딕스 ‘성적 살해(자화상)’ 1920년경.
오토 딕스 ‘성적 살해’ 1922년.(왼쪽)오토 딕스 ‘성적 살해(자화상)’ 1920년경.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신화와 성서, 그리고 각종 전설에 기대어 여성이 납치되고 폭행을 당하는 그림들은 피해자인 여성들의 관점을 드러내기보다는 영웅신화로 포장돼 짜릿한 흥분의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들은 자신을 보고 사랑에 빠진 남성들에 의해, 혹은 전쟁의 패전국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함부로 빼앗겼으며, 그것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므로, 또는 역사 속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므로 그림 속의 주제로 정당화됐다.

그러던 중 19세기 전혀 다른 반전의 역사가 시작됐다. 신화와 역사 속 저 귀퉁이에 있는 오만가지 악녀들이 그림 속에 출몰해 남성들을 해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던 유디트가 성적 유혹을 무기로 정장을 유혹했다는 점 때문에 악녀의 반열에 올라섰고, 의붓아버지의 생일에 춤을 추어 그 댓가로 세례자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 뿐 아니라, 아담의 첫 번째 부인이라 전해지는 릴리트, 수수께끼를 내서 남성을 시험하는 스핑크스, 그 외에도 이번 연재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데릴라, 밧세바, 키르케, 세이렌, 메두사, 메데이아 등의 여성들이 19세기에 한꺼번에 소환되었다. 여성이라는 것 이외에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신화적 배경이나 역사, 신분, 한 일들이 모두 다르지만 이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는 여자들이었다. 자신들이 가진 힘과 의지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었던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완력에 의해 납치당해서 몸부림치는 여성들의 정 반대편에 서 있었던 여성들, 오히려 그 힘으로 남성들을 위협하는 여성들이 그림 속에 대거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전의 배경에는 사회로 진출하는 신여성의 등장과 그에 따른 여성혐오(misogyny) 정서가 팽배했던 것을 반드시 거론해둘 필요가 있다. 마치 남녀간의 투쟁의 양상처럼 보이는 이러한 도상의 변화는 당시 서서히 성역할의 변동이 예고되고 있었던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시민사회의 소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던 19세기에는 여성이 고용과 교육의 영역에 새롭게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절대적으로 양분됐던 성적 영역이 긴장관계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특히 새로이 보급되기 시작한 피임법은 여성들로 하여금 모성으로부터 탈출할 가능성을 제공했고, 여성들은 성에 대해 수동적이어야 했던 과거의 태도로부터 벗어나 여성의 성을 지배하던 남성으로부터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여성들 일반에 대한 공포는 상대적으로 남성을 희생자로 만드는 새로운 문화적 도상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제공했던 것이다. 미술사 속에서 양성 간의 갈등과 그에 따른 살해라는 주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상존해 왔으나 19세기에 이르러 남성 일반을 파괴시킬 것 같은 팜므 파탈 이미지와 결합되어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이는 당대 현실의 맥락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기, 20세기초반에 들어서 여성혐오의 정서는 극단으로 치닫게 되며, 여성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그림들이 1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으로 제작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림 속 살해의 대상은 대개 매춘부였다. 실제로 당시에 매춘부와 하층 계급의 여성들은 성범죄의 주된 표적이 되었고 그 극단적인 형태가 성착취 후의 살해였다. 이러한 범죄의 형태는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으면서도 새로운 생활양식이 가져오는 퇴락과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도시에서 홀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에 비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점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됐고, 이는 출산율의 급감과 낙태의 성행과 관련해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 일반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토 딕스(Otto Dix)의 ‘성적 살해’는 실내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 여성을 보여준다. 실내의 광경이지만 창 너머로 도시의 건물들이 보이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갑게 느껴지며, 지나가는 이가 없어 살해당한 여성은 쉽게 발견될 것 같기도 않다. 실내는 작은 방 안에 침대 밖으로 떨어지듯 놓여 있는 피살자 이외에 가구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여성의 거꾸러진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등나무 의자가 화면의 오른쪽에 보이고 있으며, 천정에는 장식적인 램프가 빛을 발하고 있고, 방안의 광경을 침대 위에 놓인 거울이 비추고 있다. 벽지가 찢어진 좁고 소박한 실내에서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가구들은 여성의 삶을 지탱해주고 취향을 반영하는 도구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 속에서 삶과 생활의 상징으로 그려진 가구들은 주인공의 무참하고 예기치 않은 죽음을 더욱 대비적으로 부각시키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 광경 속에 살해자는 이미 자리를 떠나고 부재한다. 이 그림의 주제는 참혹하게 살해당한 여성에 대한 연민일까, 아니면 혐오일까.

그런데 오토 딕스의 또다른 작품 ‘성적 살해(자화상)’에서는 대단히 충격적이게도 작가 자신이 여성의 살해자로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여성의 신체를 글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고 광분하는 인물로 스스로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난도질당하는 여성보다 살해자인 딕스 자신의 행위가 더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딕스는 다른 자화상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트위드 정장 차림이고 1922년의 ‘성적 살해’에 그려져 있는 것과 동일한 램프와 등나무 의자들이 재현돼 있다. 작가의 자화상이 살해자로 삽입됐다는 것 말고도 이 그림 속에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난도질당한 여성의 신체 여기저기에 찍혀진 수많은 손자국들이다. 손자국, 즉 지문은 이 시대에도 이미 범죄수사의 증거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손자국은 범죄의 증거로 작가의 자화상과 더불어 예술가 자신이 살해자라는 점을 재차 확증하며, 사건의 부재증명(알리바이)과는 반대로 존재증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절단된 여성 신체의 곳곳에 찍혀 있는 지문은 딕스 자신이 이 상황의 범죄자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딕스는 초기 작품부터 스스로를 작품 속의 인물로 분장하여, 전쟁에서 홀로 살아남은 병사, 다리가 없는 상이군인, 혹은 부채의 상황을 바라보는 목격자의 모습들로 등장해 왔다. 주로 당시 자신의 처지나 인식과 관련된 역할들을 해 왔던 다른 작품들 속 자화상에 비해 이 작품은 스스로를 미치광이 살해자로 그리고 있어서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작가의 여성혐오적 인식이 정점에 달한 것이고 실제로 여성을 살해하고자 하는 내면의 욕망이 표출된 것일까?

딕스는 1926년에 매춘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됐다. 이때 그는 “내가 그리는 매춘부는 역겨움과 연민을 동시에 보여준다”라고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밝혔다.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매독을 옮겨 남성을 위협하는 매춘부는 그런 삶의 방식이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는 최하층의 여성이지만 사회악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부패의 한 상징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살해라고 해석하자면, 그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남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성을 판매하는 여성만이 혐오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이 주제의식은 우리가 받아들일만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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