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궐어라?”

부사 이현로의 입가에 빙긋한 미소가 스쳐갔다.

쏘가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물에 사는 고기로 온 몸에 우아한 무늬가 있어 금문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황금빛을 띄는 노란 쏘가리는 귀한 고기로 금린어라고 불렀다. 글줄께나 읽었다는 양반님네들은 쏘가리를 ‘궐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궐자의 음이 궁궐의 궐자와 같아 양반들은 궁궐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에 쏘가리가 그려진 그림이나 도자기를 가지는 것을 좋아했다. 최풍원이 부사 이현로에게 선물한 것은 입신양명의 뜻을 담은 궐어가 그려진 도자기였다.

“청풍에서 임기가 끝나면 꼭 궐로 들어가시기를 빌겠습니다요. 그리고…….”

최풍원이 말끝을 흐렸다.

궐어가 그려진 도자기 안에는 일천 냥짜리 어험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송만중과 경강상인을 치기 전에 부사 이현로의 손발을 묶어놓기 위한 약채였다. 어차피 송만중이는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불법은 불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불법을 행하는 데 권력을 쥔 사람의 눈가림이 필요하다는 데 있었다. 그게 이현로 청풍부사 뿐 아니라 관리들의 행태였다. 최풍원은 이현로 부사를 처음 만난 날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부사 영감, 약소하지만 본댁 가용에 보태 쓰시라고 항아리에 넣었습니다요.”

최풍원이 머리를 조아렸다.

“요즘 난장을 트느라 자네도 넉넉지 않을 터에 나까지 신경을 쓰느라 그러는가?”

이현로가 상투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봉투를 꺼내 어험에 적힌 액수를 확인하고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기뻐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양반님네들의 습성이었다.

“부사 영감님 덕택에 난장이 잘되고 있으니 당연한 일입죠.”

“내 힘껏 자네 뒤를 봐주겠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더니 역시 돈의 힘은 대단했다. 더구나 일천 냥이라는 큰돈은 시골 부사가 쉽사리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었다. 그토록 거드름을 피우던 이현로도 돈과 여색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든 처음 넘어서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한 번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이 부사는 최풍원이 요구하는 난장에 관한 일을 통째 넘겨주었다.

이현로에게 약채를 먹이고 최풍원은 북진여각으로 돌아오자마자 각 지역의 객주들과 동몽회 회원들을 모두 소집시켜 난장을 어지럽히는 송만중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④ 경강상인을 수장시켜라

최풍원의 예상대로 역시 송만중은 그냥 그대로 사라질 놈이 아니었다. 돈만 있으면 고자 싹도 틔울 수 있다고 믿는 천성이 타고난 장사꾼놈이었다. 평생을 부평초처럼 타관을 떠돌며 갖은 풍파를 겪으며 장돌림을 해온 장사꾼이 송만중이었다. 거친 떠돌이 인생이 길에서 돌부리를 한 번 만났다고 물러섰다면 애당초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송만중이처럼 질경이 같은 인물은 죽음 직전에서 저승사자 손만 잡지 않았을 뿐 이권이 칼날처럼 난무하는 장바닥에서 죽는 고통보다 더한 삶의 고통을 겪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최풍원은 이번에는 반드시 송만중을 제거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질경이는 뿌리 채 파버려야지 설 잘라내면 뿌리심만 더해줄 뿐이었다. 점점 뿌리가 깊어져 잘라버리기 힘들어지기 전에 밑동까지 싹수를 도려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행수 어른, 송만중이 황강에다 대장간을 차리고 충주에서 생수철을 가져다 절반 금에 연장을 팔고 있답니다.”

난장에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들의 동태를 살펴보러 갔던 봉화수가 돌아와 말했다.

“대장장이는 누구라 하더냐?”

“곰보라 합니다.”

곰보라면 작년 난장에서 폭리를 취하다 최풍원에게 발각되어 쫓겨난 대장장이였다. 곰보나 송만중이나 최풍원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두 사람이 의기투합 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천 영감네 대장간에도 장꾼이 줄어든 것이구먼.”

“그 뿐만이 아니라 사공 오구, 나루터 담꾼들, 난장에서 행패를 부리던 관사노 부출이까지 모두 난장을 망칠 작정으로 송만중이가 매수를 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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