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폭력에 깃든 관능성을 즐기는 주체는 누구인가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폭력에 깃든 관능성을 즐기는 주체는 누구인가
  • 충청매일
  • 승인 2019.12.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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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혐오: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익명의 여성들
(1)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던 역사

루벤스 ‘레우키푸스 딸들의 납치’ 결혼 앞둔 두 신부 납치 묘사
구릿빛 남성 피부와 분홍빛의 투명한 여성 피부 대조 이뤄
풍만해 보이는 여성들의 모습은 바로크시대 미적 이상 반영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남성적이고 영웅적 모습 그려
로마인들이 여인들을 사냥하듯 납치하는 혼란스러운 장면 묘사
신화·역사 빙자한 여성에 대한 폭력, 에로티시즘으로 둔갑
페터 파울 루벤스 ‘레우키푸스 딸들의 납치’ 1617년.(왼쪽)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5년경.
페터 파울 루벤스 ‘레우키푸스 딸들의 납치’ 1617년.(왼쪽)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5년경.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서양 미술의 역사 가운데 여성에 대한 폭력은 도처에 등장한다. 때로는 사랑의 탈을 쓰고, 때로는 전쟁의 부산물로 등장하는 이러한 장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에로티시즘을 동반한다. 여성을 납치하고 성폭행을 일삼는 역사와 신화 속의 이야기들은 과거의 화가들을 매혹시키는 주제였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주제들에 푹 빠진 화가들의 성별, 그리고 그림의 주문자, 감상자들은 남성이었다.

예컨대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레우키푸스 딸들의 납치’에서는 결혼을 앞둔 두 신부를 납치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루벤스의 화면에는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벌거벗은 두 여자들인데, 이들은 격렬한 몸짓으로 저항을 하고 있다. 화면의 아래쪽에 양팔을 허우적대고 있는 여성은 비명을 지르는 듯하고, 위쪽의 여인은 한쪽 다리를 남자에게 잡혀 공중에 떠 있으면서 한쪽 팔을 하늘로 뻗어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여인들은 실은 아르고스의 왕 레우키푸스의 두 딸이며 결혼식을 막 앞둔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들에게 반해버린 두 쌍둥이 형제들이 멀쩡히 다른 신랑이 있는 결혼식에서 신부들을 납치해가는 장면인 것이다.

쌍둥이 형제들은 실은 일종의 성폭행에 의해 태어난 제우스의 두 아들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소문난 난봉꾼 제우스는 어느날 스파르타 왕의 부인인 레다의 아름다움에 반했는데, 그가 쓰는 수법은 늘 무엇인가 조잡스러운 것으로 변신해 상대의 경계심을 풀고 성폭행을 하는 식이다.

제우스는 레다에게 접근하기 위해 독수리에게 쫓기는 불쌍한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에게 다가온다. 제우스의 변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레다는 백조를 보호하기 위해 품에 안았지만, 그것은 제우스로부터 원치 않는 성폭행을 당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두 아들이 지금, 남의 결혼식에 들이닥쳐 신부들을 약탈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을 본 신랑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결국 쌍둥이 형제 중 형은 한 명의 신랑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동생만 살아남는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동생도 죽음을 택했고, 이러한 이들의 우애를 기리는 별자리가 바로 ‘쌍둥이자리’인 것이다.

이러한 저간의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이 납치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자. 두 명은 납치하려는 남성들, 다른 두 명은 납치당하는 여인들이고, 남은 두 명이 화면 속에 더 있다. 화면의 왼쪽에 달리는 말의 고삐를 붙들고 있는 날개 달린 아이, 언뜻 사랑의 신 큐피드로도 보이는, 하지만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푸토(putto: 서양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는 날개를 가진 통통한 남자아이)일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는 것이다. 왼쪽의 남성과 여성의 얼굴 사이로 보이는 푸토가 한 명 더 보이는데, 이 아이도 말의 고삐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왼쪽의 푸토는 화면 밖을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어쩐지 애매모호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다. 납치극의 조력자이자 구경꾼인 입장에 선 아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 납치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루벤스는 이 장면을 대단히 역동적이고 관능적인 장면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인물들 각자의 목적을 표현하는 행동들이 한데 엉켜 바로크적인 격렬함이 극에 달하고, 흥분한 듯 들숨 날숨을 거칠게 내쉬는 것 같은 말들이 앞발을 들고 날뛰는 자세는 한층 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신부들이 왜 이렇게 벌거벗겨진 상태로 납치돼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인들은 벗겨짐으로써 하얀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인들의 거의 분홍빛이 도는 흰 몸과 남성들의 갈색 피부가 대조되면서 무력한 여성들과 강한 남성들이 한 번 더 대비를 이룬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좀 과하게 풍만해 보이지만, 바로크시대 남성들의 미적 이상을 반영한 이 여인들은 이 장면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눈요깃거리로 매우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의문은 그림을 속속들이 뜯어보아도 가시지 않는다. 별자리 쌍둥이자리로 만들어질 만큼 우애가 좋았던 형제들의 인생의 한 순간을 그리는데 있어서, 여인들의 납치극이 가장 매력적인 주제로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저항하는 여인들을 납치하는 장면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가? 그것이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가? 말고삐를 쥔 어린 푸토들의 존재가 이 남성들의 사랑의 순수성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인가? 여인들의 의사에 반해 납치를 거행하는 이 장면에서 어쩐지 영웅주의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오해인가? 또 이러한 나의 의문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 관람자의 입장만 반영할 뿐, 신화를 신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좁은 소견의 소치인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 말이다.

하나의 그림을 더 살펴보자. 17세기의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은 고대 로마의 역사 가운데 한 장면으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를 그렸다. 이 그림은 고대 로마의 건국 초기에 남성들의 수에 비해 여성들이 매우 부족하여 이웃한 사비니에 쳐들어가 그곳의 여인들을 집단으로 납치했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는 바로크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화가들의 관심을 끄는 고전의 주제였다. 납치된 여인들은 로마인들의 부인이 되었고, 나중에 사비니 남성들이 빼앗긴 여인들을 되찾기 위해 다시 로마에 들이닥쳤을 때 이 전쟁을 중재한 이들이 다름 아닌 로마인의 부인이자 사비니인의 딸인 여성들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푸생은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장면인 대규모 납치 장면을 그리고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래에는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온 몸이 번쩍 들려진 여인들이 있다. 이 여인들은 발버둥을 치며 손을 뻗어 구원을 요청해 보지만 이 장면의 대세적 흐름에 따라 보자면 헛수고인 것이 자명하다. 화면의 가운데 아래 노파와 기어 다니는 어린 아기가 납치되어가는 여인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것으로 보아, 납치되어 가는 여인은 우는 아기의 엄마인 것 같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상체를 벗은 남성이 여인을 빼앗기 위해 주먹으로 저항하는 수염 난 노인을 찌르려 칼을 쳐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남성의 다리에 깔려 있는 여성의 옆에 내동댕이쳐진 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여인도 아기엄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여인들은 끌려가 강제로 로마인들과 결혼하고 다시 로마인들과의 아기를 낳을 것이다. 이것은 불행인가 행복인가. 누구에게는 불행이고 누구에게는 행복일 것인가.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에서 아기 엄마든 아니든 상관없이 젊은 여자들을 납치해가는 이 야만의 장면은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단히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여성들을 납치하거나 성폭행하는 장면들은 신화나 역사를 빙자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에로티시즘과 영웅주의로 둔갑시킨 일종의 포르노그라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화가들은 잔혹하고 무자비한 납치 장면들을 보게 함으로써 관람객에게 폭력과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결과로서 일종의 흥분감을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납치를 당하면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성적 학대의 측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이 격렬한 장면을 즐겼던 주체는 누구인가, 다시 한 번 의문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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