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칼럼]아~ 그리운 월악산
[이정식 칼럼]아~ 그리운 월악산
  • 충청매일
  • 승인 2019.12.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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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내 고향 남쪽에는 아름답고 유서(由緖)깊은 명산 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은 늘 구름이 걸쳐있고 그 사이로 뾰족이 내

미는 봉우리가 달 모양 같다고 월악산이라 했던가. 소백산 허리에서 짧게 뻗어내려 우둑 솟은 월악산은 높이가 1천93m. 위치는 현재 충북 제천시 덕산면과 한수면 접경지역에 자리한다. 우리나라 명산들은 대부분 동서남으로 물이 흐르는데 월악산만은 북쪽으로 흐르는 희귀 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월악리 용하 억수계곡과 송계리 계곡을 가보면 맑은 물 이 항상 흘러 여름 피서객이 줄을 잇고 있다

충주호 물안개가 바람에 걷혀 월악산으로 밀려오면 산봉우리는 보일락 말락 한다. 마치 수줍은 여인인양 몸에 걸친 옷을 조금씩 벗어보이듯 신비로운 조화를 보는 것 같고, 하늘 맑은 가을이 오면 걸친 옷도 훌훌 벗고 하늘로 날아가 산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신비스러운 월악산은 천혜(天惠)의 요새(要塞)다. 고려시대 몽고의 난 임진왜란 때도 충주 관아 관리와 백성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또 대원군 때는 명성왕후가 난을 피해 머물렀던 흔적이 당시의 애환을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래서 월악산은 국난을 극복 해주고 백성을 돌보아 주는 은혜(恩惠)로운 산이라고 한다. 신라시대는 이 산을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렀고 미륵원을 두고 군대가 주둔했던 전략적 요충지 이었다. 옛날은 이산에 있는 ‘하늘재’를 통해 문경새재와 서울로 가는 큰 길이였다. 그래서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마의 태자, 덕주공주가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다.

월악산은 주변에 많은 문화재와 유적이 있다. 불교문화 전성기였던 신라, 고려시대 세운 절이 주변에 있다. 동쪽에 신륵사(神勒寺), 서쪽에 덕주사(德周寺), 남쪽에 미륵사. 북쪽에 보덕암(普德庵) 등 이 그것이다. 또 이 산 옆에 송계계곡으로 가보면 각종 유물 유적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중 덕주산성은 축성한 기술이 절묘해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졌고. 덕주공주가 창건해 뼈 아픈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높은 산 밑에 마애불로 새겨놓았는데 그 높이가 14m에 이른다. 이 고장 출신 백봉(白鳳) 작곡가는 신라 망국의 한을 월악산 노래가사에 실어 세상 사람들 모두 즐겨 부르게 하고 그 노래비를 월악산 신륵사 앞에 세운 바 있다.(2010년 11월)

월악산 정상을 올라가보면 큰 바위덩어리로 되어 있다. 그 둘레가 4km나 되고 국사봉 절벽높이가 150m의 수직 암벽으로 웅장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북쪽은 유선형으로 되어 있어 나사모양으로 돌고 돌며 정상을 올라가한다. 정상은 공간이 좁지만 소백 산하를 한 눈에 조망(眺望)할 수 있다. 또 날이 맑으면 제천시와 충주시가지 일부가 보이며 충주호의 푸른 물결이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월악산은 내륙 깊은 곳에 파묻혀 빛을 보지 못하였다. 국립공원 지정이 14번째로 너무 늦어(1984년) 널리 알려 지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앞으로 잘 보존하고 개발해야 할 가치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유서 깊은 아름다운 명산이 내 고향 가까이 있는 것 만으로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싶다. 문화유적지와 빼어난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역사의 혼이 스며있는 문화유적지는 더욱 다듬어 보존가치를 높이고 월악산의 빼여난 경관이 국민의 사랑받는 보배로운 충북의 명산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 그리운 월악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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