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읍내로 돌아온 미향은 부사 이현로를 만나기 위해 청풍관아 형방 김개동이에게 다리를 놓았다. 그리고는 부사 이현로에게 학현취적으로 봄놀이 원적을 가자며 유혹했다. 청풍관아에서 학현취적을 가려면 육로를 따라 걸어가거나 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그렇지만 읍나루에서 교리로 건너가 걸어서 가는 길은 팍팍하고 거칠어 나무하는 초군이나 약초 캐는 약초꾼들 발품에 이골이 난 행상꾼들 무지렁이 백성들이나 달리 방법이 없으니 걷는 길이고, 원님 같은 나리님들이나 행세깨나 하는 부자들은 읍나루에서 도화동까지 거룻배를 타고 간 다음 도화동천을 따라 취적대로 들어갔다.

학현취적은 금수산 계곡에 있는 여러 계곡 중 한 곳이었다. 워낙에 빼어난 명산인지라 금수산 품안에는 선경이라 불리는 산곡이 수도 없이 많았으나 도화동천은 비경 중 비경이었다. 그런 도화동천에서도 학현취적은 단연 으뜸이었다. 금수산 깊은 산중을 타고 내려와 부서질 것처럼 맑은 물은 층층을 이루며 하늘로 치솟은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고, 수십 장 멍석을 펼쳐놓은 듯 평평한 바닥은 여인네 속살처럼 하얀 화강암이 너럭바위를 이루고 있었다. 직벽을 이루며 솟은 층층바위 틈에는 수천 년은 묵었음직한 소나무들이 분재처럼 똬리를 틀고 그 사이 절벽을 가르고 하늘에서 은방울 같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날아가는 학을 닮은 학현폭포였다. 학현폭포는 박문수 어사가 태어난 도화동에서 도화동천을 따라 두어 마장쯤 올라간 계곡에 숨겨져 있었다. 승천하던 용이 흥에 겨워 몸을 비트는 듯한 형상으로 하늘로 치솟듯 물줄기가 떨어지는 학현폭포는 금수계곡에 있는 폭포 중에서도 아름다움이 가장 으뜸이었다. 하늘 까마득하게 직벽으로 솟은 벼루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호랑이 포효 소리처럼 우렁차고,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일모래 뗏장을 짊어질 노인도 불끈 힘이 솟아나게 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아래로는 명주실 서너 타래를 풀어도 모자를 정도로 시퍼런 못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만들었고 수면 위로는 안개처럼 물보라가 흩날렸다. 학현취적에 가면 세상만사 근심은 없어지고 그저 몽환만 있을 뿐이었다. 미향이는 그곳으로 원적을 가자며 이현로를 꼬드겼다.

이현로와 관속들은 거룻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도화동에 내렸다. 관속들은 원적에 쓸 물건들을 지게에 지고 등에 메고 도화동천을 따라 학현취적으로 향했다. 계절은 봄이라 포근한 기운이 완연했지만 그래도 계곡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관속 중 한 명이 매고 가던 짐보퉁이를 풀어 호피를 꺼내 이현로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이현로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앞장서 걸었다. 학현취적 초입에 이르자 이현로는 관속들을 물리었다. 그러고는 미향이만 데리고 폭포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올라갔다. 덧옷도 없이 명주치마와 저고리로 치장한 미향이가 폭포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몸을 떨었다. 이현로가 어깨를 감싸고 있던 호피를 벗어 미향을 감싸주었다.

“참으로 비경이 아니더냐?”

학현폭포에 이르러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비경에 빠져있던 이현로가 미향이를 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부사 영감, 저어기 굴로 가시지요.”

환하게 비치는 얇은 명주옷을 입은 미향이가 폭포 뒤쪽에 나있는 굴로 이현로를 끌었다.

“허허, 그것 차암…….”

아무도 보는 눈은 없었지만 벌건 대낮에 그것도 건천에서 하는 짓이 남사스러웠던지 이현로가 어색한 몸짓을 했다. 그러나 그다지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영감, 제 몸을 만져 보시어요. 영감을 보니 달아올라 이미 뜨겁사옵니다.”

미향이가 콧소리를 내며 요분질을 쳤다.

“허허-.”

이현로가 짐짓 딴전을 피며 헛기침을 해댔다.

“영감 모습이 오늘 처음인 숫총각 같사옵니다.”

미향의 놀리는 소리에 이현로 얼굴이 벌개졌다.

이현로도 미향이만 만나면 골치 아픈 온갖 세상사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청년처럼 힘이 솟았다. 그저 만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향이는 그런 여자였다.

폭포 뒤로 뚫린 동굴 안은 어스름처럼 어둑어둑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서로의 몸에 의지를 하며 더듬더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우뢰처럼 귀를 멍멍하게 만들던 폭포 물소리가 귓전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바깥과는 달리 동굴 안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오히려 동굴 안쪽에서 불어오는 훈기에 움츠렸던 몸이 풀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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