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봄의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가을의 단풍 또한 지극히 아름답다. 그래서 가을의 산하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여름내 푸르름의 무성함 속에 감춰 두었던 자신만의 멋을 한껏 드러내는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제가 살아온 제 빛깔대로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필자도 올 가을에는 가깝게 있으면서도 풍광이 아름답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는 두 곳을 찾았다. 그 중 한 곳은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서 노란 은행잎이 나비의 군무처럼 떨구어 지는 저수지를 끼고 있는 곳이었다. 필자는 시집 간 딸과 은행나무 터널을 함께 거닐며 동심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은행잎을 주워 아이처럼 머리 위로 날리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깊어가는 가을의 한 때를 보냈다. 

이렇게 풍광 좋기로 소문난 관광지의 단풍도 우리를 황홀하게 하지만, 바로 집 앞 놀이터에 터를 잡고 커온 나무들이 보여주는 단풍도 어느 이름난 관광지의 단풍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단풍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나는 가끔 아파트 창문을 열고 그렇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신비로운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져들곤 했다. 잘 꾸며놓은 어느 정원에 머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는 가을은 지극히 아름답다. 그래서 시인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단풍 진 풍경을 노래하고 예찬했다.

그런데 가을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인들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면서도 속절없이 가는 계절을 더 이상 붙들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만추의 끝자락을 붙들고 그 고운 단풍에 취하기도 했지만, 지는 낙엽 때문에 쓸쓸해하고 그래서 눈물짓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가을에 사랑을 이루기도 했지만 다른 어떤 사람은 그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가을의 끝자락인 올해 11월말에는 겨울로 가는 길을 재촉하듯 비가 내렸다. 결국 온 산하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단풍도 거의 졌다. 나뭇가지는 텅 빈 채 잎사귀 몇이 간신히 매달려 있을 뿐이다. 땅에 떨어져 누운 낙엽도 색이 바래지고 발에 밟혀 스러져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낙엽처럼 떠난 사람이 그리워졌다. 가을처럼 그렇게 우리 곁을 무심히 떠난 이가 한없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 한편을 썼다.

비오는 밤이 깊어갑니다 / 비 그치고 날이 밝으면 / 잎은 더 떨어지고 / 떨어진 잎사귀만큼 넓어진 가지 사이로 / 마음 놓고 불어온 바람이 / 비어가는 가지를 마저 / 흔들어댈런지요 /

찾는 이 없는 산날망에도 / 이 시간 비는 내리고 / 떨어져 내린 잎사귀 몇몇은 / 땅 위에 쓰여진 이름자를 덮고는 / 잠시 뒤척이며 머물 수 있을런지요 / 단풍빛도 스러진 밤을 / 늦은 비가 재촉하고 있네요 // - 졸시 <겨울비>

12월 초에도 비가 내렸다. 가을에 대한 아쉬움을 끊어내라고 서두르는 듯 빗방울은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나뭇잎에도 어김없이 떨어져 내렸다. 바람도 불었다. 가지 끝에서 흔들리던 여린 잎은 그예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겨울을 불렀다. 이제 눈이 내릴 것이다. 그러면 잎을 다 떨군 나무는 더욱 강한 의지로 겨울을 버틸 것이다. 그리움과 아픔은 가지 한 곁에 숨겨둔 채 봄이 오는 날을 기다리며 눈발 날리는 이 겨울을 견뎌낼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