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예로부터 한국은 정(情)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인지 공직생활을 하다 보면 민원인들의 정(情)과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된다. 청탁의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옛 속담처럼 무언가 하나를 받게 되면 다음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게 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민원인들의 작은 성의를 받는 것이 공무원의 청렴의 의무에 위반된다는 의식이 거의 전무했다. 성의를 무시하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온정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절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겐 정의 유혹은 그야말로 뿌리치기 힘든 불가항력과 같다. 매년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지속적으로 청렴에 관한 교육을 통해 ‘거절의 방법’을 알려주는 이유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 봐도 기분 좋은 거절이란 없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청탁의 순간에 당황하지 않고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사소한 거절부터 습관화해야 한다.

2016년 9월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무 관련자나 이해관계자의 부정청탁과 관련된 일부 공무원들의 비위 사례가 연일 기사에 오르내린다. 아마 그들 또한 처음은 거창한 이유가 아닌 ‘거절할 수 없어서’ 혹은 ‘이 정도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나 받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것은 ‘정(情)’이나 ‘성의’가 아닌 ‘뇌물’이 되는 것이다.

법적 규제를 통해 부패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청렴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청렴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과 신념을 통해 우리의 청렴 감수성부터 향상시켜 작은 불씨가 산불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더 나아가 작은 불씨조차 허용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청렴은 더 이상 전래 동화 속 청백리 위인들의 미담이 아니라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청렴에 대한 시각과 인식을 바꾸고, 행동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어딘가 불편하고, 어쩌면 융통성 없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실천의 걸음이야말로 공직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시키고 우리의 이야기를 향기롭게 바꿀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국민 신뢰의 확보, 더 나아가 청렴한 국가라는 국제적 신임을 얻기까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공직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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