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대행수어르신, 아까 장터에서 행패를 부리던 놈은 부출이라고 하는 데 청풍관아 관사노라고 합니다.”

강수가 장에서 행패를 부리던 관사노 부출이를 혼내주고 북진여각으로 돌아와 최풍원에게 고했다.

“관사노라…….”

최풍원은 아무래도 찜찜했다.

관사노가 자유로운 신분이기는 했지만 장터까지 나와 장세를 거두기 위해 행패를 부리고 위세를 부렸다면 뒷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풍원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화수야, 넌 오늘부터 나루터와 장터 일대를 유심히 살피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즉각 내게 알리거라!”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북진난장 안팎을 면밀하게 살필 것을 명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불안감은 가라않지 않고 여전했다.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알 수 없는 불안감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직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모사가 꾸며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최풍원은 그런 습습한 느낌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 장마당으로 나섰다. 사람들을 만나면 혹시 무슨 풍문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아이구! 대행수 어르신 같이 귀하디귀한 분이 지들같이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니 광영, 광영이옵니다.”

최풍원이 주막으로 들어서자 앵두갈보가 쫓아 나와 호들갑을 떨었다. 그 소리에 들마루에 앉아있던 술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읍을 했다.

“대행수님, 이젠 대장쟁이도 그만 둬야겠심더!”

주막집 한쪽에서 술을 마시던 대장장이 천승세 노인이었다.

“무슨 얘기신가?”

“쇠붙이도 사람 한가지라 정성을 쏟을수록 쓸 만한 연장이 되는데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사람들이 모이질 않으니 재주가 다 된 게 아니겠는겨?”

“사람들이 모이질 않는다니요?”

“난장이 틀어지고 인총이 꾸준했는데 한 열흘 전쯤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요.”

“줄어들어요?”

“농번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금이 대장간은 일 년 중 가장 호경기 아닌겨? 한가할 때 미리 벼려두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대장간이 터질 지경이 돼야 하는 데, 외려 반으로 줄었으니 재주가 가지라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게 아니겠는겨?”

한때는 아무리 단단한 무쇠도 떡 주무르듯 해서 만들지 못하는 연장이 없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던 천승세 대장장이였다. 대장간의 불꾼부터 시작해 다루지 못하는 쇠가 없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천 노인이 북진난장에서 그만 기가 죽어 있었다. 최풍원은 천 노인의 푸념을 들으며 북진난장에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신했다.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미리 연장을 준비해두기 위해 붐벼야 할 대장간이 오히려 줄어든 점이나 북진여각에서 난장 관리하는 것을 알고 있는 관아에서 그것도 관사노에 불과한 부출이가 대낮에 그것도 장마당 한복판에서 유세를 부린 것은 분명 무슨 연관이 있는 듯싶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최풍원이 여각으로 돌아오니 봉화수가 별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합니다.”

“무슨 낌새가 있는가?”

“오구가 요새 달라졌다고들 합니다.”

오구는 청풍 읍리나루에서 북진나루 사이를 거룻배로 옮겨주는 사공이었다. 청풍관아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제일 많은 나루터가 읍리나루와 북진나루 사이였다. 더구나 북진에 난장이 틀어진 이후부터는 한밤중에도 강을 건너는 경우가 허다했다. 북진에서 육로로 황강이나 서창, 덕산이나 수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풍 읍리나루를 거쳐야 했다. 아니면 먼 산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어떻게 달라졌다는 겐가?”

“나루에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제때 배를 띄우지 않고 늑장을 부린다고 합니다. 어제도 해가 지기도 전에 배를 띄우지 않아 밤새 강변에서 노숙한 장꾼들이 부지기수랍니다. 몸이 단 사람들이 사공막을 찾아가보면 대낮에도 비어있는 날이 태반이라고 합니다.”

봉화수가 나루터에서 주워 모은 이야기를 했다.

오구가 청풍과 북진 사이를 오가며 모는 거룻배는 북진여각에서 장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구가 기거할 사공막을 나루터 근처 언덕배기에 지어주었다. 오구는 선가로 봄·가을 두 차례 북진여각에서 곡물을 받았다. 그러니 북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따로 선가를 낼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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