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악녀:남성을 힘들게 하는 나쁜 여자들
(5)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성대결
남성 유혹해 죽이는 반인반수 ‘스핑크스’는 19세기 산물
수수께끼 내는 행위 이외 다른 짓을 했는지 묘사된 바 없어
귀스타브 모로 작품 속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나체로 밀착
수수께끼를 풀기 보단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태도 보여줘

사진 왼쪽부터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프란츠 폰 슈툭 ‘스핑크스의 키스’ 1895. 작가미상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도기 표면의 그림)’ 기원전 470년경.
사진 왼쪽부터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프란츠 폰 슈툭 ‘스핑크스의 키스’ 1895. 작가미상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도기 표면의 그림)’ 기원전 470년경.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스핑크스(Sphinx)’라고 하면 대개는 이집트 피라미드 지구에 거대하게 서 있는 반인반수의 형태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남성의 얼굴에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는 이집트에 고유한 형상이지만, 그리스에는 같은 ‘스핑크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반인반수의 존재가 있으며, 이집트와는 달리 명백히 여성의 얼굴과 헤어스타일을 가진 조각상들, 도자기의 그림들이 전해져 오고 있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는 존재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하는 여러 텍스트에 몇 가지 수수께끼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네 개의 발과 두 개의 발, 세 개의 발을 가지고 하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거기에 덧붙여 “바다와 땅의 짐승들 중 유일하게 본성을 바꿀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많은 발을 써서 움직일 때 가장 속도가 느린 것” 등의 내용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 델피에서 테베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문 앞에 앉아 스핑크스는 길 가던 사람을 붙들어 이런 수수께끼를 내고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그 벌로 행인을 죽인다.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풀지 못하면 길 가던 사람을 죽이다니, 피라미드의 수호신같은 역할을 하는 이집트의 스핑크스와는 정반대의 악당인 것이다. 그렇다면 스핑크스가 내는 질문의 해답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인간’이다. 어릴 때는 네 발로 기고, 성인이 되어서는 두 발로 걸으며, 노년에는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바로 우리 인간 말이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달리 정답을 말하고 문을 통과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저 유명한 오이디푸스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가 쳐 놓은 죽음의 관문을 뚫고 자신의 운명을 향해 한 걸음 더 걸어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비극적 운명으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예언에 따라 버려졌지만 죽지 않고 코린트 지역에서 성장했고, 결국 우연히 만난 남성이 아버지라는 것을 모른 채 살해했으며, 운명적인 힘에 이끌리듯 테베로 가서 자신의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테베의 왕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눈을 찌르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비극적 인물이 오이디푸스인 것이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아버지 살해나 어머니와의 결혼 등이 심리학적으로는 인간의 여러 콤플렉스들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의 기막힌 운명 가운데 테베의 문을 거쳐 가기 위한 스핑크스와의 대결은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신화와 역사, 전설 속의 악녀들이 모조리 끌려나와 문학과 연극, 음악, 미술의 소재로 활용되던 19세기에 스핑크스는 상체가 여자이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이유로, 팜므 파탈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한다.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했다는 대목이 원래 스토리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반인반수의 몸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반짝이는 눈매, 그리고 퍼붓는 키스로 지나가는 남성들을 홀리는 스핑크스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급격한 반전인지는 그리스의 도자기 위 표현에 그려진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그림을 보면 대조가 가능하다.

그리스의 검은 도자기 표면에 적색으로 그려진 그림 속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서로 대화를 나누듯 마주 보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길을 가다가 만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턱에 손을 얹고 생각 중이다. 머리는 사람이지만 짐승의 몸에 날개를 달고 있는 스핑크스는 이오니아식 기둥 위에 고요히 앉아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긴장감은 느껴지지만 어떤 위협이나 유혹 등의 감정적인 부분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19세기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켜 매달려 있다. 날개를 달고 짐승의 몸을 한 것은 그리스 시대에 상상했던 스핑크스와 동일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스핑크스는 두 앞발을 오이디푸스의 가슴 쪽에, 뒷발은 그의 성기 쪽에 밀착시키고 지나치게 가까이 얼굴을 맞댄 채 입을 살짝 벌려 무엇인가 말하는 것 같으며, 그녀의 푸른 눈은 반짝이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한쪽 다리를 뒤로 주춤거리며 경계하는 몸짓을 하고 있지만 스핑크스의 빛나는 눈빛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벌거벗은 가슴을 노출시키고 있는 스핑크스의 유혹을 오이디푸스는 벗어나게 될 것이지만,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이들의 운명은 오이디푸스 발아래 사지가 절단되어 죽어있는 이들의 사체 부분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스핑크스는 더 이상 수수께끼나 내는 괴물이 아니라 유혹하는 여성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들의 마주보는 얼굴은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푸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유혹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 화가 프란츠 폰 슈툭(Franz von Stuck)의 ‘스핑크스의 키스’에서 스핑크스는 남성에게 치명적인 키스를 퍼붓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스핑크스는 벌거벗은 남성의 허리를 앞발로 꽉 끌어안고 꼼짝 못하게 한 뒤에 열렬히 입을 맞추고 있다. 남성은 눈을 감고 키스를 당하고 있으며 당황한 나머지 허공에 손을 뻗어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뒤로 젖혀 거부할 수 없다는 듯이 스핑크스의 행동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가 하반신을 감추고 있는 스핑크스는 상체만 보면 영락없는 여성이다. 여성이자 괴물인 스핑크스와 남성의 대결에서 남성은 이미 진 것처럼 보인다. 이 남성은 현명하게 수수께끼를 풀고 가던 길을 계속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핑크스와의 대결에서 이미 그는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으며, 그 결과는 처참한 죽음이 될 것이다.

스핑크스 이야기가 처음 탄생한 고대 그리스에서 스핑크스는 성적인 존재로 묘사된 바 없으나, 온갖 악녀들을 다 소환하고 있었던 19세기에 팜므 파탈로 다시 태어났다. 고대 그리스에는 스핑크스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는지,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행위 이외의 다른 짓을 했는지에 대해 묘사된 바는 없으므로, 남성을 유혹하여 죽여 버리는 스핑크스는 전적으로 19세기의 산물인 것이다.

19세기. 가정에 속박되어 있던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배움에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를 다녀 학위를 따며, 의사면허를 받거나 물리학자가 되던 시대, 남편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하고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며 일을 하기 시작하던 때, 사회적 책무에 눈을 떠 참정권을 요구하던 시대, 19세기에 등장한 이러한 신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권리를 말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은, 기존에 보아 왔던 여성들에게서보다 생경하고 생생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여성들에게 한 번 걸리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위협 또한 감지했을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그들은 온갖 유형의 팜므 파탈 이야기들에 실어 날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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