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송만중, 난장을 어지럽히다

[충청매일] ③ 송만중, 난장을 어지럽히다

북진에 난장이 틀어진 지도 어느덧 달포 가량이 지나고 있었다. 난장이 틀어질 때만 해도 비봉산 정수리에 남아있던 잔설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고 이젠 사방에 햇이파리가 돋아나 봄이 완연했다. 그래도 아직은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어서 북진난장은 여전히 북적이는 장사꾼들과 장꾼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오히려 농번기를 앞두고 농삿일을 준비하느라 장에 나온 사람들로 북진난장은 더욱 활황을 이뤘다. 난장이 활기찰수록 북진나루에 들어와 정박하는 배들도 늘어났다.

“화수야, 장터를 한번 돌아보자꾸나.”

최풍원이 난장을 둘러보기 위해 봉화수를 불러 장마당으로 나섰다.

“대행수 어르신! 어디 출타하시니이까?”

마차꾼 달섭이었다.

“어디 가는가?”

“야아, 질골 가마에 항아리 가지러 갑니더!”

달섭이는 요즘 신이 났다.

“일거리가 많은가?”

“오늘만 벌써 세 행보쨉니다요!”

달섭이가 늙은 누렁이의 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달섭이는 하릴없이 투전판이나 전전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판이었다. 그러다보면 마누라는 앙알거리고 성질 급한 달섭이는 참지 못하고 밥상을 집어 던지는 일이 다반사라 집안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달섭이가 한 해 중 가장 바쁜 철은 추수가 끝나면 타작한 곡식 섬을 실어다주는 초겨울 전까지였다. 그 두 달 남짓이 일 년 중 달섭이가 가장 바쁘고 일하는 전부였다. 그러니 그 살림이 오죽했을까. 그런데 올해는 난장 일로 봄도 오기 전 시작한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매일 서너 차례씩 나루터에 정박해 있는 배에서 여각이나 상전으로 물산들을 실어 날랐다. 오늘은 북진 하류에 있는 질골 가마터로 옹기를 가지러 가는 모양이었다. 달섭이가 신이 날만도 했다.

“그래, 요새도 코를 물어뜯는가?”

“웬걸입쇼. 요새는 말을 잘 들으니 사이가 좋지유.”

달섭이가 하는 일이 남의 짐을 대신 옮겨다주고 운임을 먹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스무 해를 동고동락한 늙은 일소 누렁이가 있었다. 누렁이도 오랜 세월을 같은 일만 되풀이하다보니 인근 길을 훤하게 알고 있어 달섭이가 술에 취해 늘어지거나 졸고 있어도 알아서 척척 일을 해냈다. 그렇게 서로의 관계가 좋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짐승이라 해도 귀찮거나 힘들 때가 있을 터였다. 더구나 스무 해를 훨씬 넘긴 늙은 소니 사람으로 치면 환갑 진갑 다 지난 노인이나 진배없었다. 내 몸 하나 추단하기도 힘든 지경에 무거운 짐까지 옮겨야 하니 누렁이도 달섭이 말을 거역할 때가 종종 있었다. 더구나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니 누렁이도 일머리를 훤하게 꿰고 있었다. 누렁이는 언덕배기나 고갯길이 나오면 미리부터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성질 급한 달섭이는 그 꼴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달섭이는 그런 누렁이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쇠꼬챙이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찌르거나 그래도 듣지 않으면 길가에 널려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닥치는 대로 누렁이를 패댔다. 그래도 버티면 성질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누렁이 코를 물어뜯었다. 누렁이가 진저리를 치고 코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 데도 달섭이는 코뚜레를 인정사정도 없이 잡아챘다. 이쯤 되면 아무리 고집 센 누렁이라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달섭이에게 붙여진 별명이 ‘소지랄’이었다.

“자알 다녀 오게나!”

“야아, 대행수 어르신!”

달섭이가 끄는 마차가 워낭소리를 울리며 강 하류로 느릿느릿 내려갔다.

“최 행수, 이 물건 좀 봐주시구려!”

장마당으로 들어서자 가가에 잡곡을 팔던 만석이가 콩 섬을 번쩍 들어 맷방석에 쏟으며 말했다.

“여적지 장바닥을 빠대며 곡물장사 한지가 얼만데 안직도 콩 볼 줄을 모르는가?”

“내 눈에 아무리 들면 뭔 소용이우. 검사관은 따로 있는디…….”

“이잔 자네가 검사관 하게!”

최풍원이 씨익 웃었다.

‘장사치란 길미가 남는 일이라면 용천백이 마목 자리에도 입을 맞춘다’는 말이 있었다. 한 푼의 이득이라도 남기는 일이라면 문둥병이나 지랄병으로 죽은 사람의 상여 다리에도 입을 맞춘다는 이야기이니 장사꾼들의 속성이 어떠하리라고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파는 사람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별의별 술수를 다 부렸고, 사는 사람은 사는 사람대로 한 푼이라도 덜 주기 위해 갖은 야료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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