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너는 지금 즉시 동몽회원들과 나루의 담꾼들을 몽땅 모아 오늘 밤 안으로 짐을 모두 부리거라!”

최풍원이 봉화수를 불러 나루터에 정박하고 있는 경강선 물산들을 하역하고 여각 곳간에 쌓여있는 특산품들을 선적할 것을 명했다.

북진나루에는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나루터 곳곳에는 어른 키 높이만큼이나 장작더미가 쌓여졌다. 날이 저물자 화톳불이 여기저기서 타오르기 시작하고 나루터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불빛에 강물이 넘실거리고, 배를 오르내리며 짐을 부리는 담꾼들의 그림자가 강바닥에 어지럽게 너울거렸다. 담꾼들뿐만이 아니었다. 뱃꾼들, 장꾼들, 구경나온 마을사람들까지 경강선에서 짐이 부려지는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북진에 나루가 생기고 대선이 안쪽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이고, 여러 척의 대선이 한꺼번에 정박한 것은 좋은 구경거리였다. 북진나루를 새롭게 확장한 까닭에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강수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아이들을 풀어 나루터는 물론이고 장마당 상전과 여각 곳곳을 물샐 틈 없이 지키거라!”

봉화수가 동몽회 대방 강수에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북진 일대를 철저하게 경비하라고 일렀다. 물건을 하역하고 배에 선적할 때 나루터와 여각을 오가며 혹여라도 빼돌리거나 분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나루터 주변은 난장이 벌어졌던 한낮보다도 더 북적거렸다. 북진나루에서는 밤새 작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부려진 곡물 섬들과 소금 섬들이 나루터 곳곳에 쌓이고 줄줄이 열 지어 있는 젓갈 단지와 어물 짐들이 줄나래비를 이뤘다.

“밤 사이에 그 많은 물산을 내리고 싣다니 대단하오이다!”

“이 정도 나루면 남한강 제일이 되겠소. 목계보다도 번창하겠소이다!”

밤샘 작업 끝에 모든 물산들의 하역과 선적이 끝나자 유필주와 홍만경이 흡족해했다. 그리고는 선주와 경강상인들이 북진나루를 떠났다.

선단이 풀어놓고 간 물산들이 풀어지자 북진난장은 한층 활기를 띄었다. 경강상인들에게서 값싸게 사들인 곡물들이 풀리자 난장의 곡물전은 더더욱 풍성해졌다. 곡물전에는 찹쌀·멥쌀·먹쌀까지 나왔고, 잡곡만 해도 보리·밀, 조·수수·메밀·콩·팥·기장·옥수수가 둥구미마다 수북하게 산을 이루고 있었다. 최풍원이 매입한 곡물은 모두 일천 석이 넘었다. 이 정도 곡물양이면 청풍관아의 농민들이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충분한 양이었다. 최풍원은 이 곡물들을 아주 싼 값으로 난장에 풀어놓았다. 배를 주리면서도 고혈을 짜는 장리쌀의 이자가 무서워 굶을 수밖에 없었던 고을민들에게는 최풍원이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북진장에 가면 장리쌀의 반도 되지 않는 값에 곡물을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난장은 연일 성시를 이뤘다.

청풍 인근 수산·덕산·한수·제천 등지에서 열리던 장도 일시적으로 모두 철시를 해야만 했다. 북진에 가면 값싸게 곡물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먼 거리의 사람들까지 난장으로 몰려드니 향시에는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았다. ‘장사 속에서 장사 된다’더니 다른 장의 여리꾼들조차 물산을 가지고 나타나는 객주들과 보부상들을 북진으로 이끌었다. 난장에는 장사꾼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인근 사람들은 물론 먼 곳의 사람들까지 장 구경을 하러 모여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런 장꾼들을 등쳐먹는 사기꾼·도박꾼·싸움꾼·무뢰배들에 들병이들까지 몰려드니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장사는 저절로 호황을 이뤘다. 북진여각의 객주들도 원행을 접고 앉은 자리에서 물건을 매매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수월한 장사는 없었다. 매일같이 북진난장에서는 놀이판이 벌어지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거래되는 물산의 양도 늘어났다. 그렇게 되자 각지에서 온갖 물산들이 모여들었고, 난장은 더욱더 활기가 넘쳐났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난장 규모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장사꾼들은 저마다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고, 물건을 사려고 장마당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난전마다 그득한 물산들이 어우러진 장마당만 쳐다봐도 배가 불렀다.

북진난장의 곡물전, 어물전, 포목전, 잡화전, 남새전, 목물전, 옹기전, 유기전에는 사방에서 온 객주들과 보부상들이 물산들을 매입하느라 문전성시를 이루고, 매입한 물산들을 싣고 각지의 장마당으로 떠나는 장사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북진에는 이들이 뿌리고 간 엄청난 물산과 돈이 강물처럼 흘러 다녔다. 물길이 얼어 목계보다 한참이나 늦게 틀어진 북진난장이었지만 이대로만 좀 더 활황이 지속된다면 그동안의 손해를 보충하고도 많은 이득이 생겨날 것 같았다. 난장은 대성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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