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한때 잘 나가던 여자 아이돌 그룹의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던 그녀. 연예인을 꿈꾸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힘들고 모진 시절을 다 이겨내고 잘 조련된 동물원 원숭이처럼 그녀는 짧은 치마와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미디어와 광고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녀,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약봉지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흩어져 있었고 유서 한 장이 발견되었다. 우리의 죽음은 너무도 늦게 발견되어 어린아이들의 눈물 자국이 말라 소금길로 변했다. 신문에선 복지 사각지대를 거론하며 가슴 아픈 죽음 소식을 전했다. 어떤 이의 죽음이 어제처럼 기억되는 시대, 오늘 또는 내일, 또 누군가의 죽음이 부음처럼 활자 될 것이다.

한국GM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직원 560여 명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무더기 해고 결정, 비정규직 인생은 도급 계약 종료가 적인 유서 같은 종이 한 장이면 해결되는 세상이다. 평생 GM을 위해 일해 왔지만, 평생 GM 직원이 아니었던 사람들, 하청에 하청으로 굴러가는 산업 구조는 우리의 숨통을 졸라가며 이익을 취했고 수익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숨통을 끊어 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에서 매출 1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억 소리 나는 돈이다. 무능한 가장과 천진난만한 가족이 부유층 집에서 벌이는 사기행각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무능한 가장을 포함해 가족은 가난에 대해 무감각해 보인다. 가난이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긴 하지만 그 가난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 보이지 않는다. 일가족의 사기 행각은 더욱 대담해지고 호구로 전락한 부유층 집은 돈 빼먹기 손쉬운 숙주다. 영화에서 부유층 가장은 아무 잘못이 없다. 원만한 부부관계와 아들에게 무한 애정을 다 하는 가정에 충실한 부유층 가장. 죽음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무능한 가장이 부유한 가장을 죽인다. 그리고 숙주 내부 깊숙이 들어가 존재 자체를 숨긴다. 그 자리에 또 다른 숙주가 들어오며 영화는 끝난다. 이 슬픈 코미디가 또 어디 있을까.

이윤 획득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는 죽음의 역사와 함께한다. 이윤 추구를 노동력 착취에서 얻고자 하는 자본의 역사는 잘 포장된 상품을 끊임없이 생산 판매하며 가치가 떨어지면 씹던 껌을 아무렇게나 뱉어 버리듯 폐기 처분한다. 선거철만 되면 민생과 경제 살리기의 구호를 외치는 정치집단은 숙주의 몸뚱이를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절대 그럴 리 없지만, 삼성이 무너진다면 하청에, 하청에 수많은 하청에 딸린 수백만 노동자는 길거리로 나 앉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삼성은 지켜야 하는 자본주의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의 노동자 몇이, 몇백이, 몇천이 해고 되거나 죽어도 삼성의 시스템은, 삼성의 자본주의는 지켜져야 한다. 오늘도 난공불락의 거대한 숙주에 기생하는 허락된 충(蟲)들은 황금탑 꼭대기에 서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녀는 끝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동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문 가장, 찾아오는 이 없는 빈집에서 시체처럼 늙어가는 엄마, 자본주의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죽음으로 선택하도록 허락한다. 민주공화국 이 땅에선 죽음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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