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유 선주, 경상들은 하루를 늦었다하나 그 하루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오. 장사는 시기가 중하다는 것쯤은 잘 아실 거요. 난장은 시작되었는데 약속한 물산이 도착하지 않아 장마당이 썰렁하니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찾아왔던 장꾼들 실망이 어떠했겠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 장군들이 사발팔방 돌아다니며 우리 북진장에 대한 소문을 풍기고 다니면 앞으로 장사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게 아니겠소? 북진난장에 대한 장꾼들 실망은 지금 당장 물건을 팔지 못해 손해를 본 것보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요. 한시가 급한 판에 당신들은 약조한 기일에 올라오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구색을 갖춰 장사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당신들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 아니오? 그래서 환곡이라도 빌리기 위해 청풍관아를 다녀오는 길이오. 경상들도 환곡이 어떤 쌀인지 잘 알고 있지 않소? 워낙에 지독한 고리채인지라 애비가 굶어 죽어가도 빌려먹기를 꺼리는 게 관청 환곡이오. 나도 어지간히 급하면 그런 환곡을 빌려보려고 했겠소? 나도 유 선주와 홍 선주가 기일을 지키지 않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최풍원은 오히려 두 선주에게 손해배상이라도 물릴 기세였다.

“그럼 어찌 했으면 좋겠소?”

“나도 손해를 보았으니 두 선주도 손해를 감수하는 선에서 흥정을 합시다!”

“최 행수가 말해 보시오.”

“내가 처음 약조한 대로 시세에 삼 할은 더 얹어주겠소. 그런데 곡물 시세는 북진 시세를 기준으로 하십시다!”

최풍원이 먼저 조건을 제시했다. 

“여기 시세를 얼마나 치려는지 그게 문제 아니겠소?”

“유 선주도 이미 장을 돌아보았으니 알겠지만. 지금 북진에서는 쌀 한 말에 일 전 닷 푼이오. 거기에 삼 할을 얹어주겠소!”

“그래도 한 말에 이 전도 안 되는 값이잖소? 그 값이면 목계에서 처분하고 말지, 뭣 땜에 예까지 왔단 말이요?”

목계에서 거래되던 미곡은 한 말에 이전이었다. 그런데 북진난장의 시세는 일 전 닷 푼이었다. 최풍원이 삼 할을 더 쳐준다고 해도 목계의 시세에 미치지 못했다. 힘든 물길을 거슬러 북진까지 왔는데 목계에서보다도 헐한 값을 받게 되었으니 유필주와 홍만경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다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워낙에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으니 흥정할 여지도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대신 배끌이 비용은 내가 척당 지불하겠소!”

한참 만에 최풍원이 말문을 열었다.

“그걸 선심이라고 쓰는 거요! 그건 이미 목계에서 약조한 것이고, 우릴 여기까지 불러 올렸으니 당연한 것 아니오?”

홍만경이 벌컥 성질을 부렸다.

북진으로 오는 남한강 물길에는 곳곳에 여울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곳은 물이 얕거나 강폭이 좁아 물살이 세차게 흘렀으므로 짐을 잔뜩 실은 배들은 배 바닥이 강바닥에 닿아 돛대나 노로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올 수가 없었다. 그런 곳에는 배끌이가 있었다. 그렇게 배끌이들은 여울을 통과시켜 주고 선주로부터 품삯을 받았다. 북진으로 올라온 경강상인들의 배끌이 비용을 최풍원이 대신 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북진까지 경상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풍원이 목계에서 이미 약속을 했던 터였다. 그러니 당연히 해주기로 했던 일을 마치 거저 해주는 것처럼 생색내는 최풍원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홍 선주, 성질내지 말고 내 말을 들어보시오. 홍 선주도 보았겠지만 지금 북진에는 영남 상인들이 가져온 쌀이 곡물전에 쌓여 있지만 매기가 거의 없소. 그러나 장사는 매기가 없어도 일정량의 물산은 준비를 해둬야 하므로 나는 비싼 환곡을 차입하느라 이미 큰 손해를 보고 있소이다. 이것은 홍 선주가 약조를 어겨 벌어진 일이오. 사정이 이런데도 홍 선주 같으면 약조했다고 그 값을 다 쳐주겠소? 장마당에는 매기가 없어 금이 떨어져 있고, 관아에서 환곡이 방출되면 쌀값은 지금보다 더욱 떨어질 것이오! 일 전 닷 푼도 나로서는 후하게 친 것이오! 더구나 미곡은 거래도 도통 이뤄지지 않고 있소. 유 선주가 가지고 온 쌀을 그 값에 사겠다는 것도 선매 약조를 했으니 사긴 사겠지만, 나도 그 처분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오. 마음대로만 할 수 있다면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소!”

최풍원의 심각한 어조가 경강상인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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