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핵심 ‘수출규제·강제징용’ 입장차 여전
日, 기존 방침 되풀이 가능성…다시 꼬일수도

[충청매일 제휴/뉴시스] 한국과 일본이 다음 달 하순 중국 청두(成都)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에 별도의 정상회담 개최를 조율키로 했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앞으로 정상회담까지 한 달 동안 한일 당국 사이에 바쁜 움직임이 예상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3일 오후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일본 나고야 칸코호텔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서로 회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일은 지난 22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조건부로 유예하면서 파국은 피한 모양새다. 하지만 당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원인이 됐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나 강제징용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았다.

특히 수출규제와 관련, 우리 정부는 수출규제 대화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동안 일본 측 3대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정지하기로 했다. 일본은 과장·국장급 대화를 통해 규제대상 품목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강 장관은 “일단 하나의 큰 고비를 서로 어렵게 넘겼다”며 “약간의 돌파구(breakthrough)가 생겼고, 우리로선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이 그동안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를 별개 문제로 보고 오히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국제법 위반 상태를 해결하라고 주장한 만큼, 수출규제 문제부터 다시 꼬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기존 방침대로 수출규제 철회를 강제징용과 엮고 국장급 대화를 장기간 끌면서 되려 우리 측을 압박할 가능성을 벌써부터 제기한다.

지난 22일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고위관리는 무역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당국간 회담 재개에는 응할 것이지만 “전혀 타협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재차 밝히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 측은 지난 8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이미 지소미아 종료를 카드로 한 차례 사용한 만큼, 다시 지소미아를 거론하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WTO 제소 절차를 철회한 게 아니라 재가동할 수 있고 마냥 시간끌기로 가면 우리가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강하게 희망하는 만큼 정부로서도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

아울러 한일 갈등의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 역시 입장차가 여전하다.

모테기 외무상은 “현재 최대 과제와 근본적인 것은 강제징용 문제”라며 “한국에 하루라도 빨리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줄 것을 계속해서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수출규제 조치와 연계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지소미아 종료와 연계했다. 결국 강제징용 판결 문제가 풀려야 한일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양측이 마찬가지다.

이에 지난 6월 정부는 일본에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1+1’안을 제시했지만 일본이 거절했다.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내는 것은 우리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본에서 제안한 양국 기업이 조성하는 기금에 국민성금까지 더하는 ‘1+1+α(국민성금)’도 해결방안으로 거론되지만, 양국이 합의를 한다고 해도 피해자들의 동의 여부가 남아있어 단기간 해소가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게다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지난 5월부터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주식·특허권 등 자산을 압류하고, 법원에 배상액 상당을 매각하는 현금화를 신청하면서, 이르면 내년 봄부터 매각이 시작될 수 있어 단기간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이중고까지 예상된다.

한편 이날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 결정 직후 주변 측근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한국에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았지만 “미국 (압력)이 매우 강해서 한국이 (지소미아 유지)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 정부가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열어서 (한국의) 수출관리 운영실태의 신뢰성 확인을 통해 재검토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을 외교 경로를 통해서 전달해왔다”며, 일본이 먼저 화이트 리스트 복원 의사를 밝혀 태도 변화를 보였기 때문에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에 합의했다는 뜻을 밝혔다.

핵심 관계자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이야기할지 등 어떤 것도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 “다만 피해자분들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 필요한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여전히 똑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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