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유 선주, 벼락불에 콩 튀기겠소이다!”

유필주가 마음이 급해 한꺼번에 경강상인들을 쉬지 않고 소개하자 최풍원이 빙긋이 웃으며 농을 건넸다.

“벼락불보다도 내 속은 더 타오!”

유필주가 가슴 치는 시늉을 했다.

“난, 북진여각 최풍원이라 하오. 예까지 오시느라 고생들 했소이다.”

최풍원이 유필주의 다급함을 모르는 척 딴전을 피우며 함께 온 경상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 행수! 우리는 한시가 급하오. 빨리 거래를 합시다!”

홍만경도 최풍원에게 빨리 흥정을 시작하자며 서둘렀다.

“한양 양반들 느긋한지 알았더니 어찌 그리도 조바심을 낸단 말이오. 화수야, 밖에 수천이 있으면 들라 하거라!”

경강상인들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풍원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곁에 있던 봉화수에게 말했다.

“전번에 약조한 대로 미곡을 모두 넘길 테니 최 행수는 여기 특산물을 내게 넘겨주시오!”

“미곡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온 잡곡도 몽땅 넘기겠소이다.”

잡곡상 양섭이와 복달이도 자신들이 싣고 온 곡물도 받아주기를 원했다.

“소금과 건어물도 받아주시오.”

“나는 잡상 봉수라 하오. 내가 가지고 온 물건은 자질구레한 잡살뱅이라 해도 난장에 풀어놓으면 장꾼들 눈을 홀린 그런 것들이오. 요새 한양에서 불나게 팔리는 것들이오!”

“약상 석근이오. 난, 엽전으로 지불할 테니 여각에 있는 약초들을 한 번 둘러보게 해주시오.”

 경강상인들이 각기 자기 물건을 소개하며 거래하기를 원했다.

“최 행수, 목계에서 약조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유필주와 홍만경이 다짐받듯 물었다.

“물론이오! 허지만 지난번 약조한 대로는 할 수는 없소!”

“무슨 소리요? 여기까지 올라오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약조를 지키지 못하겠다니?”

“그건 약조와 다르지 않소?”

최풍원의 말에 유필주와 홍만경이 발끈했다.

“지난번 목계에서의 곡물가와 지금 북진에서 매매되는 곡물 금 차가 너무 크오.”

“최 행수, 목계에서의 약조를 깨는 것 아니오!”

“유 선주, 곡물 금이란 것이 본래 뜬 금 아니겠소? 여기 장마당에 나가 보시오, 곡물이 어떻게 팔리고 있는지.”

“그렇지만 목계의 시세에 무조건 삼 할을 더 얹어준다고 약조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예까지 뭣하러 올라왔겠소이까?”

이미 북진 난장을 둘러보고 장마당에 곡물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지 둘러본 경강상인들이었다. 그럼에도 유필주는 그것을 모르는 척 지난번 목계에서 약조한 것을 지키기를 고집했다. 시세가 어떻든 자기 물건을 내놓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하는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유 선주! 장사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아무리 약속이 중하다지만 장에 뻔한 금이 있는데 터무니없는 금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건 억지 아니겠소?”

“지근 여기 북진장 금이 그렇다 해도, 최 행수가 목계에서 한 약속은 선매 성격이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금이 오르내리는 것과 상관없이 약조한 금을 지켜야하는 것 아니오?”

유필주는 신의를 내세우며 처음 약속한 대로 거래할 것을 고집했다.

“나도 그것을 깰 생각은 전혀 없었소이다.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유 선주와 홍 선주요. 두 선주가 기일을 어겼기 때문에 나도 큰 손해를 보았단 말이오!”

“하루 늦은 것뿐이오. 그것도 여기 장마당에 어울릴 물건 구색을 맞춰 함께 올라오려고 다른 상인들을 모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오.”

유필주가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명을 했지만 그것은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유핀주와 홍만경 두 선주만 북진으로 올라왔다면 난장이 틀어지기 며칠 전에 벌써 북진에 당도했을 터였다. 그러나 난장을 펼친다는 최풍원의 말을 듣고 이왕이면 물목 구색을 갖춰 올라오려고 한양에서 내려오는 경상들을 기다리다 시간이 지체된 것이었다. 최풍원도 경상들이 늦은 이유를 봉화수로부터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사는 장사였다. 호의에 마음이 흔들려 물건 값을 깎을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지금 경강상인들이 가지고 온 물산들 값을 조금만 깎아도 인근 마을 사람들 굶주림은 해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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