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목계에서 거래되던 쌀 한 말은 이 전이었다. 최풍원은 목계 객주들과 거래하는 금에 삼 할을 더 주겠다고 유필주와 약조를 했었다. 유필주가 가지고 있는 쌀은 대곡전석 일백 섬, 소곡전석 이백 섬을 합쳐 모두 삼백 석이었다. 대곡전석은 스무 말이 한 섬이었고, 소곡평석은 열다섯 말이 한 섬이었다. 곡물전 상인 말대로라면 대곡전석 한 섬은 석 냥, 소고전석 한 섬은 두 냥 이 푼 오 리 였다. 목계 시세와 비교하면 대곡 한 섬마다 한 냥, 소곡 한 섬마다 칠푼 오리가 줄어들었다. 기껏 물길을 헤치고 올라왔는데 오히려 손해를 볼 형편이었다. 유필주는 북진으로 올라오며 최풍원이 약조한 대로 한 말에 이 전씩 금을 쳐서 거기에 삼 할을 붙여 모두 일천칠백 냥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북진에 와 시세를 보니 일천칠백 냥은커녕 일천삼백 냥을 받기에도 버거울 것 같았다. 며칠 사이에 사백 냥 넘는 돈이 밑 가고 있었다. 아무리 선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장사에도 상도덕이 있는지라 시세를 무시하고 무조건 약조를 지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유필주도 기일 약속을 하루 어긴 터였다. 유필주로서는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홍만경도 마찬가지였다.

유필주를 비롯한 경강상인들이 난장을 둘러보고 봉화수를 따라 북진여각으로 따라갔다. 유필주 일행들이 북진여각에 도착하자 그들은 또한번 여각의 규모와 번잡함에 놀랐다. 지난 번 목계에서 이미 북진여각에서 보관하고 있던 물목량에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눈으로 본 여각의 규모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봉화수가 유필주 일행을 데리고 별채로 갔다. 별채의 일각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바깥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별천지가 펼쳐졌다. 숲으로 일곽을 이루며 빽빽하게 둘러쳐진 별채는 바깥세계와는 완전하게 분리되었고, 실제의 심산계곡을 옮겨다 놓은 듯 온갖 기암괴석으로 꾸며진 정원에는 폭포가 떨어지며 연못이 두락을 이루고 있었다. 북진여각의 별채는 이 세상 풍광이 아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편하게 쉬도록 하시지요.”

봉화수가 두리번거리는 유필주 일행들을 별채의 사랑으로 안내했다. 담을 사이로 행랑채의 번잡함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별채는 가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고요를 깨뜨릴 뿐 산중 암자보다도 조용했다. 그러나 유필주는 마음속이 시끄러워 밤새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다.

최풍원이 북진여각으로 돌아온 것은 다음날 점심나절이 한참 지난 두어 식경이 흐른 다음이었다.

“유 선주, 간밤에 미편한 것은 없었소이까?”

“최 행수! 약조를 하고 어딜 다녀오십니까?”

최풍원이 돌아왔다는 전갈에 유필주가 단숨에 묵고 있던 사랑에서 뛰어나왔다.

“유 선주, 뭘 그리 조급허시우?”

유필주에게는 한 식경이 여삼추였다. 그런데도 최풍원은 조금도 서두르려는 기색이 없었다.

“배에 실린 짐을 풀고 여기 특산품들을 실어야 하는 데 또 하루를 공치게 생겼으니 어찌 마음이 바쁘지 않겠소이까?”

유필주는 애가 탔다.

“그런데 유 선주, 차질이 좀 생겼소이다.”

“무슨?”

“난, 경상들이 약조했던 날이 지나고 이튿날까지도 올라오지 않아 목계에서 곡물을 처분하고 한양으로 내려간 것으로 생각했소! 이미 난장은 시작됐고 나도 몸이 달아 청풍부사를 만나고 오는 길이오.”

“청풍부사는 왜?”

“왜겠소! 장사는 해야 하는 데 곡물은 당장 필요하고, 유 선주는 올라오지 않으니 어떻하겠소? 관아 환곡이라도 빌려다 장에 풀어야 할 것 아니겠소!”

최풍원이 모든 책임을 유필주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가지고 온 곡물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러니 차질이 생겼다고 하는 게 아니겠소?”

“흐이그!”

유필주 얼굴에서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지 말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봅시다!”

최풍원이 유필주를 다독이며 경강상인들을 데리고 별채 사랑으로 들어갔다.

“최 행수! 선주들을 소개하겠소! 여기 홍 선주야 지난번에 이미 안면을 텄고, 잡곡상 양섭이와 복달이, 소금상 만근이, 어물상 상갑이, 잡상 봉수, 약상 석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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