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거 낭팰새! 다른 경상들까지 독려해 함께 왔는데, 정장 대행수가 없으니 어쩐다냐?”

유필주의 표정에서 난감함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약조를 해놓고 그깟 하루를 못 참고 자리를 비우다니…….”

홍만경은 최풍원의 행태에 대해 심히 못마땅한 투였다.

“여기 경상분들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워낙에 우리 북진 난장 사정도 다급한 지라 그리 된 것이니 노여움을 푸시고 저를 따라 가시지요?”

수천이가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거친 물길을 올라오시느라 애들 쓰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모실 테니 여기서 편하게  쉬시지요.”

봉화수도 경상들을 향해 읍을 하며 북진여각으로 갈 것을 권했다.

“이봐, 홍 선주! 날짜를 지키지 못한 우리 잘못도 있으니, 우선 대행수가 올 때까지 여각에서 기다려 봅시다.”

유필주가 홍만경에게 두 사람의 말을 따르자 했다.

강나루를 지나 여각으로 가는 길목에 틀어진 장마당에는 아침나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물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객주들은 자신들의 고장에서 가지고 온 물산과 미끼 상품을 풀어놓고, 북진여각에서는 곳간을 열어 물산들을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난장에는 소문을 듣고 나온 장꾼들이 난장이 틀어졌던 첫날보다도 몇 배로 늘어나 장마당이 북새통을 이뤘다.

“이보시게! 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감세!”

유필주가 앞서가던 수천에게 말했다.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그만 쉬시고 다음날 돌아보심이…….”

수천이가 짐짓 유필주를 말리는 체 했다.

“아닐세! 내일은 내일이고 가는 김에 보고 가세!”

유필주가 수천이를 앞서 장마당으로 들어섰다.

장마당에는 많은 물산은 아니었지만 한양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특산품들과 다양한 물산들이 모개모개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난장 구석구석을 살피던 유필주 일행이 곡물전을 들어서며 안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열흘 전 목계에서 최풍원이 말했던 상황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풍원의 말로는 북진에는 미곡을 비롯한 잡곡들이 턱없이 모자라니 그것들을 중점으로 싣고 올 것을 원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장을 둘러보니 미곡은 물론 다른 잡곡들까지 전마다 그득그득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싣고 온 물건 값을 제대로 받기가 힘들 것은 분명했다.

“이보시게, 저 곡물들은 어디서 들어온 것인가?”

유필주가 수천이에게 물었다.

“새재를 넘어온 영남 곡물들입니다.”

“영남서 저렇게 많은 물량들이 넘어왔단 말인가? 거기도 내리 삼 년을 흉년이라고 하던데…… 더구나 무엇으로 저걸 옮겼단 말인가?”

“저까짓 것 옮기는 것이야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저 정도 물량은 저희 여각 식구들을 동원해도 해동갑이면 예까지 옮겨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난장을 틀기 며칠 전 대규모 영남 상인들이 곡물을 마소에 싣고 와 특산물과 바꿔 갔답니다.”

그러나 수천이의 대답은 거짓말이었다. 물론 봉화수와 영남 상인들이 가지고 온 곡물도 있었지만 그건 소량에 불과했고, 대부분 북진에서는 나지 않는 영남 특산물들이었다. 봉화수가 새재를 넘어 문경으로 간 것은 영남 특산품들을 미리 선점해 황강 송만중이를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이는 결국 송만중이를 통해 경강상인들에게 이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들이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경강상인들은 미곡이나 서해에서 올라온 해산물들을 가지고 올라와 이 지역의 특산물들과 맞바꿔 가지고 가는 것이 통례였다. 최풍원도 유필주에게 곡물들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최풍원의 말과는 달리 지금 북진 장마당에는 곡물들이 상전마다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수천이가 영남 상인들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유필주가 지금 난장에서 보고 있는 곡물은 영남 것이 아니라 최풍원의 북진여각에서 의도적으로 풀어놓은 것들이었다. 최풍원은 유필주와의 거래에서 유리하도록 경상들이 당도할 시각에 맞춰 북진여각의 곳간을 열어 곡물들을 풀어놓은 것이었다.

“이 쌀 한 말에 얼마요?”

유필주가 곡물전 중 한 상전으로 다가가 물었다.

“일 전 닷 푼이요. 많이 사면 더 헐한 금으로 주겠소. 장사가 너무 안 되오. 하루 땟거리가 급한 판에 누가 비싼 쌀을 찾어야지유. 이러다가는 싸전하다 굶어죽었단 소리 나오게 생겼소.”

“흐음…….”

유필주와 경강상인들의 표정에서 낙담하는 빛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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