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글쎄요.”

이번에도 봉화수가 최풍원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천우복이가 하는 말이 ‘앞에 고기는 천 서방이 자른 고기고, 뒤에 고기는 우복이가 자른 고기이옵니다’라고 했다는구나.”

“천 서방과 우복이?”

봉화수는 아직도 최풍원이 말하려는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대우해주고 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느냐?”

그제야 봉화수가 뜻을 알아채고 환하게 웃었다.

“장사도 마찬가지니라. 장사꾼이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 농군은 논밭에 나가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약초꾼은 험한 산을 오르내리고, 어부는 물에서 힘들게 노를 저으며 그물을 치는 데 우리는 하는 일이 뭐더냐. 그들이 힘써 생산해 놓은 물산을 받아 입으로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장사꾼은 누구 덕에 먹고 사는 것이냐? 농군들이다. 장사꾼은 그들에게 고마워하며 장사를 해야 한다.”

“그래도 장사는 이득을 남겨야 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이지! 장사는 돈을 버는 일이다. 그러나 돈 버는 것에만 목표를 둔다면 큰 장사꾼이 될 수 없다. 돈을 벌어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하느니라.”

“대행수께선 그 목표가 무엇입니까?”

“난 장사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기 이재만 앞세워 남을 못살게 만들면 종당엔 장사도 망하고 만다. 화수야! 지금 북진은 무엇보다도 먹는 게 시급하다. 그런데 먹을 게 장바닥에 넘쳐도 집에서 내올 물건이 없어 굶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런 사람을 살려야 우리 북진여각도 산다. 그러려면 바깥에서 들어오는 곡물은 최대한 싸게 매입하고, 여각에서는 최소로 이문을 남겨 난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풀어야 한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던 경강상인들의 선단이 나루로 들어섰다. 유필주 경강선단의 규모는 대선 다섯 척과 중선 두 척, 모두 일곱 척의 배였다.

“대행수 어른! 저 정도면 엄청난 물량을 싣고 있을 것 같습니다!”

봉화수가 나루 안으로 들어서는 경강선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오늘 홍만경이든 유필주든 경강상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

“네에?”

이제껏 목 빠지게 기다리던 경강상인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최풍원의 돌연한 태도에 봉화수가 놀라 물었다.

“화수야, 난 오늘 밤 읍내를 다녀올 테니 오늘 밤 수천이와 함께 유필주 일행을 접대하거라. 난 내일 해거름쯤에나 돌아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봉화수는 혹여 경강상인들과의 약조가 깨져 난장이 깨어지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여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그 연유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썰렁하던 북진나루에 경강선들이 닻을 내리기 시작하자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 이제껏 저렇게 큰 배들이 한꺼번에 닻을 내린 적은 없었다. 대선 크기의 경강선이 한 척만 나루에 닻을 내려도 며칠 동안은 온 나루터가 시끌벅적 하는 터에 선단을 이룬 대선들이 일시에 북진나루에 정박하니 이를 구경하려고 장사꾼들과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나루터는 온통 북새통을 이루었다.

“두 분 선주님들! 험한 길 오시느라 고생이 작심하셨겠습니다.”

목계에서 안면을 텄던 수천이가 먼저 다가가서 홍만경과 유필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최 행수는?”

유필주는 수천이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최풍원부터 찾았다.

“저는 봉화수라고 합니다. 대행수 어른은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 떠나시며 말씀하시길 여러 선주분들을 극진히 모시라고 했습니다.”

봉화수가 앞으로 나서 읍하며 말했다.

“분명 약조를 했는데 출타를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유필주가 같이 올라온 선주들을 돌아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오시기로 약조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행수께서는 오늘 점심나절까지도 유 선주를 기다리다 오시지 않자 다른 방도를 찾아보겠다며 청풍관아로 들어가셨습니다.”

유필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번 두 사람이 목계에서 약조를 한 바로는 분명 북진에서 난장이 열리기 전날까지는 반드시 올라올 것을 약조했었다. 유필주도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하루가 꼬박 늦어졌다. 혹시라도 최풍원이 약조를 깨버린다고 해도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은 유필주 쪽이었으므로 할 말이 없었다. 유필주는 몸이 달았다. 유필주도 지금이라도 당장 특산품을 싣고 한양으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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