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봉호 충북 옥천군의원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바탕으로 형성된 4자 성어에 ‘눌언민행(訥言敏行)’이라는 말이 있다. ‘말은 더듬는 듯이 천천히 하고, 행동은 재빠르게 하라’는 뜻이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말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말씀 언(言)이 붙은 글자는 나쁜 의미인 경우가 많다. ‘거짓 와(訛)’자는 말(言)로 되는(化:될 화) 것은 다 거짓이라는 의미를 담은 글자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진실일 뿐, 말로 하는 것은 애당초 실체가 없는 거짓이라는 의미다. ‘그릇될 류(謬)’는 말(言)이 높이 날면 오류가 생긴다는 의미를 담았고, 말이 만들어내는 것(乍=作)은 다 속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詐(속일 사)’가 생겼다. 상대로 하여금 나의 말에 빠지게 하는 것이 ‘諂(아첨할 첨)’이며, 두 마리의 개(二犬)가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듯이 사람이 말로 으르렁대며 싸우면 감옥에 간다는 의미에서 ‘獄(감옥 옥)’이 생겼다. 말을 빼어나게(秀:빼어날 수) 잘하는 것을 남을 꾀는 행위로 보아 ‘꾈 유(誘:유혹할 유)’도 생겼다.

관청(官廳)은 국가의 사무를 집행하는 국가 기관이다. 그런데 관청의 청(廳)자를 보면 여러 부수가 모여 구성돼 있는데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한 일(一), 마음 심(心) 이렇게 여섯 글자가 합해 ‘들을 청(聽)’자가 만들어졌다. 그 의미를 보면 귀 이(耳)와 임금 왕(王)은 듣는 것이 왕처럼 매우 중요하고, 옆의 열 십(十)과 눈 목(目)은 열 개의 눈으로 보듯 하고, 하나 일(一)과 마음 심(心)은 하나의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관청에서 일하는 관리들은 모든 일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말은 언제나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말은 가능한 한 적게 하고 행동, 즉 실천은 가능한 한 빨리 해야 한다.

말은 안으로 농익어야 실하고 맛이 있다. 소가 되새김하듯 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진실로 굳센 자만이 능히 하고 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대단히 굳센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는 이항로 (李恒老) 선생의 글귀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침묵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자께서도 “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라고 했다. 할 말은 하라. 그러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자상한 가르침이다.

말은 사려 깊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고 했다. 성경에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은 말보다는 행동이, 행동에 앞서 경청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이 너무 변화무쌍해 방향감각을 잃고 삶의 지침마저 혼란스러운 때이지만, 눌언민행이라는 가르침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람은 짐승들과 달리 배불러야만 편하고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비밀은 나만의 것이 아닌 이웃과의 관계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늦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카자흐스탄의 속담이 있다. 말을 했으면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치인들이 마인드가 중요한 시절이다.

그래서 언제나 백성과 소통하고 싶었던 세종대왕의 애민정책이 간절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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