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새로 확장한 북진나루는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강의 본류와 나루 사이를 막고 있던 모래톱을 제거하고 돌 축대를 둘러친 북진나루는 한양의 삼개나루 못지않은 번듯한 모습이었다. 수백 섬을 실은 경강선은 물론 온갖 배들 수백 척이 한꺼번에 몰린다 해도 얼마든지 정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해졌다. 청풍관아와 도가가 있는 읍내나루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북진나루는 환골탈퇴 했다. 북진 장마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청풍장으로 몰리는 장꾼들의 발길을 북진장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최풍원의 일차 뜻은 이루는 셈이었다.

“대행수, 저어기 배들이 오고 있소!”

함께 장마당과 나루터 일대를 둘러보기 위해 나왔던 객주들 중 누군가가 강의 본류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강 하류에서 대선 크기의 황포돛배 여러 척이 북진나루를 향해 선단을 이루며 올라오고 있었다. 저 정도 규모의 선단이면 경강상인들의 경강선이 분명했다. 최풍원이 물길을 헤치며 올라오는 배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강상인들이 나루터에 정박을 하고나면 거래가 시작될 것이었다. 지난 번 목계에서 경상들과 벌였던 흥정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곧 벌어지게 될 거래를 어떻게 하면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목계서 홍만경과 담판을 벌일 때 그는 내게 문서를 요구했지만 나는 끝까지 문서 작성은 하지 않았다. 말은 번복할 수 있지만 문서는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하면 말이든 문서든 확답을 피하고 나중에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나한테 유리할 땐 내 문을 활짝 열고 상대를 받아들여야겠지만 불리할 때는 잠시 물러나 전후 사정을 살펴야 한다. 다급하다고 해서 허둥대며 상대에게 매달리게 되면 오히려 상대의 술수에 말려들고 만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나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니겠느냐? 흥정은 서두르지 말고 반드시 성사를 시켜야 할 흥정이라면 파투가 날 상황이라도 다시 타협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경우에든 반드시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풍원이 북진나루를 향해 점점 가까워지는 경강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장사는 신의가 바탕 아닌지요?”

“물론이다. 신의는 매우 중허지. 도둑도, 사기꾼도, 무뢰배에게도 신의는 있다. 그건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다.”

“그런데요?”

“신의가 지켜지는 세상은 누구나 바라는 세상이다. 허나 신의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현실이 아니다. 도둑들 간의 신의, 무뢰배들 간의 신의, 장사꾼 간의 신의를 지키는 방법이 각기 다르지 않겠느냐. 장사는 현실이다. 현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먹고 사는 일이 걸린 게 장사다. 화수야 너는 장사를 왜 한다고 생각하느냐?”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장사하는 이유를 되물었다.

“부자가 되는 게 아닌지요?”

“부자가 되어서 뭘 하려고 그러느냐?”

“편안하게 사는 거지요.”

“혼자서만?”

“식구들과 함께요.”

“식구들만?”

“그럼 돈을 벌어 누구와 편안하게 산단 말입니까?”

“만약 너에게 땅이 많아 혼자 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또 소작을 부쳐줄 사람도 없다면 어찌하겠느냐?”

“언제나 소작인은 넘쳐도 땅이 노는 것 보셨나요?”

“일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농사를 지을 소작인이 없으면 묵게 되겠지요.”

“묵은 땅이 늘어나면 소출도 줄어들고 당연히 지주도 소작료가 줄어들겠지. 그러면 지주가 부자가 되려면 어찌 해야겠느냐?”

“소작인들을 잘 관리해야겠지요.”

“어떻게 잘 관리를 해야겠느냐?”

“…….”

봉화수가 너무 막연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느 마을에 천가 성을 가진 우복이라는 백정이 살고 있었단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와서는 한 양반은 ‘천 서방, 고기 한 근만 줌세’하고 말하고, 다른 한 양반은 ‘우복아, 고기 한 근 다오’ 했다는구나. 천우복이가 고기를 잘라 두 양반에게 주었다. 그런데 두 양반은 똑같이 한 근을 주문했는데 한 양반의 고기는 양이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지사 적은 양반이 따져 물었겠지. ‘왜 내 고기가 적으냐고?’ 그러니까 천우복이라는 백정이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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