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사당패들이 벌인 놀이판이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상쇠 뒤를 따라 영기와 두레기가 앞서고 꽹과리잽이, 징잽이, 설장구잽이, 북잽이가 어우러져 천지를 울리며 흥을 돋우었다. 북진장이 열리고 있는 장마당은 사당패들이 울리는 풍물 소리로 사방이 진동했다. 사당패들의 놀이판을 구경하는 장꾼들도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거렸다. 사당패들이 놀이판을 벌이고 있는 한쪽 켠에서는 무남이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곰방대에 살담배를 다져 넣으며 불을 댕기느라 빨쭈리에 주둥이를 댄 채 연신 뻑뻑 빨아대고 있었다. 무남이는 사당패를 끌고 다니는 모가비였다. 장마당이 펼쳐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무남이를 사람들은 암사내라고 불렀다. 마흔 가까운 나이였지만 워낙에 곱상한 동안인데다 목소리마저 계집 같아서 언뜻 스쳐보면 사내라고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하는 행동거지마저 천생 계집인지라 질펀한 욕지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그를 암사내로 부르는 사람들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야, 이년아! 똥궁댕이를 요리조리 까불러야 장꾼들이 암낼 맡고 모일게 아니냐! 조신하게 뒀다 규수 할라고 애끼냐?”

무남이가 꽃나비 동구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는 계집처럼 앙칼진데 입은 어찌나 껄떡진지 모갑이가 무남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상쇠 목말 위에서 겁에 질려 잔뜩 움츠리고 있던 앳된 무동이가 앙칼진 무남이의 목소리에 겁을 먹고 점점 더 굳어졌다.

“종무동도 저리 겁내는 년이 삼무동은 언제 할 것이며 칠무동은 아예 해 넘어 갔구나. 애당초 저런 년은 양반님네 노리개로 들이밀어 양반님 해우채나 받아써야 하는 건데.”

무남이의 해우채나 받아써야겠다는 말에 어린 동구리 눈에서 눈물이 낙숫물 듣듯 했다.

“익도 않은 것한테 암내는 뭐고 허우채는 뭔 말이유!”

“그러게 말여. 양반님네가 아무리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조렇게 어린 애동이까지 먹을 정도로 염치가 없을까나. 해우채나 바라고 호구 속으로 바치는 작자가 몰염치한 개놈이지.”

줄줄 눈물을 흘리는 어린 동구리가 측은했던지 담뱃대로 사발을 돌리던 버나쟁이 만호가 무남이에게 한 마디 던졌다. 그러자 땅재주를 넘는 살판쟁이 순팔이도 얌통머리 없이 지껄여대는 무남이가 얄미워 만호를 거들었다.

“지랄들 하고 자빠졌네. 양반님네들 식성 걱정을 왜 네놈들이 하냐? 네놈은 사발이나 자알 돌리고, 네놈은 땅바닥하고 동무질이나 하덜 말어. 네놈이 그동안 깬 사발값이며 코 깬 약값이 어디서 나온 줄이나 알어? 다 저년들 밑구멍에서 나온 돈이여!”

만호와 순팔이는 시와 때도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무남이의 걸판진 방파매기에 기가 질러 대꾸도 못하고 수굿해졌다.

“그놈, 입 한번 걸다. 화수야, 저기 모가비에게 엽전이나 좀 갖다 주거라!”

사당패의 놀이판을 구경하던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말했다. 봉화수가 무남이에게로 다가가기도 전에 무남이가 깜짝 놀라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최풍원 앞으로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대행수 같은 큰 어르신이 지들 같이 천한 놈들 놀이판에 와주시니 우리 사당패에 광영이옵니다.”

어린 무동이를 혼내던 종전과는 딴판으로 무남이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이 작심들 하네.”

“고생이랄 게 뭐 있습깝쇼? 지들이야 늘 하는 지랄인데요!”

“이번 난장이 풍성해지게 자네들도 힘 좀 써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깝쇼. 난장이 성시가 되도록 걸판지게 놀아드리겠습니다요!”

“고맙네!”

“뭘 입쇼!”

봉화수가 엽전 꾸러미를 던졌다. 철썩 엽전 꾸러미가 땅바닥에 떨어지며 먼지가 일었다. 사당패 모갑이 무남이가 방아깨비처럼 허리를 굽실거렸다. 무남이의 조아림을 뒤로 하고 최풍원이 나루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봉화수가 묵묵하게 뒤따랐다.

“화수야, 장사는 앞문은 잠가도 뒷문은 항상 열어둬야 한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봉화수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되물었다. 최풍원은 대답도 없이 나루터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물었다.

“흥정이 깨지더라도 매조지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맘에 차지 않는다 해서 무 자르듯 끊어내다 보면 주변에 남아 있을 사람이 없다. 특히 장사꾼에게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는 봄내음이 흠뻑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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