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진나루에 닻을 내릴 유필주 같은 경강상인들의 배는 수백 섬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대선이었다. 더구나 유필주는 자신이 한양의 궁궐에 공납할 물산을 단번에 매입하기 위해 다른 경강선의 선주와 함께 올라오기로 약조를 한 터였다. 그만한 물량이면 난장의 성패는 물론 북진여각의 존폐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대한 물량이었다. 최풍원으로서는 유필주 선단의 물산을 어떻게 매입하느냐에 따라 여각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으므로 객주들처럼 우왕좌왕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객주들께서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소. 그러나 걱정만 하다 아무 것도 못하고 일을 그르친다면 걱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난장은 이제 시작입니다. 객주들께서 대동단결하여 날 믿고 따라준다면 걱정할 것이 없소이다!”

최풍원 대행수가 불안해하는 객주들을 다독이며 자신을 믿고 따라줄 것을 당부했다.

경강상인 유필주와 경강상인들이 무슨 연유가 있어 아직 북진나루에 당도하지 않고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최풍원은 그들이 반드시 올라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풍원이 그렇게 확신하는 것은 북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북진이 비록 남한강 상류의 산중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거래되는 물산의 값으로만 합산한다면 하류의 목계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지가 대부분인 북진은 농토가 빈약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로는 자급자족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것이 삶이었다. 예전부터 ‘산 밑에 사는 사람은 산 뜯어먹고 살고, 강가에 사는 사람은 강 뜯어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었다. 어떻게든 다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였다. 북진에는 농토가 귀한 대신 천지사방이 산이고 물이었다. 북진은 농산물이 귀한 대신 산과 물에서 나는 특산품이 흔했다. 유필주가 목계에서 선뜻 북진으로 올라오겠다고 한 속마음도 거기에 있었다. 그의 배에 실려 있는 것은 대부분 쌀과 잡곡을 비롯한 곡물이었다. 그것을 처분하려고 목계에 정박을 했지만 여러 가지로 타산이 맞지 않았다. 목계는 남한강 하류에 위치한 지역이라 지형이 평평하여 강 유역으로는 기름진 농토가 줄줄이 펼쳐진 곳이었다. 당연히 곡물생산이 많을 뿐더러 값 또한 저렴한 곳이었다. 유필주로서는 한양부터 싣고 온 곡물에 운임까지 붙여 처분해야 했으니 산지보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매매가 될 리 없었다. 거기에다 유필주는 대궐에서 있을 큰 연회에 공납할 특산품까지 구입해야 했다. 목계에서는 유필주가 구하려는 특산품도 구하기 힘들었고 있어도 소량이었다. 처분하지 못한 곡물에 공납할 특산품까지 구해야 하는 유필주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최풍원이 유필주에게는 구세주였다. 유필주가 배를 끌고 올라오겠다고 한 것은 자신의 곡물을 처분하고 공물로 바칠 특산품 매입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이 북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진도중의 객주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유필주를 비롯한 경강상인들의 직매 문제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산지가 대부분인 이곳이 지형 특성상 큰 마을보다는 삼삼오오 작은 동네들이 골골이 박혀있어 장이 서기보다는 다리품을 팔아 일일이 걸어 다니는 등짐장수들에 의해 물산이 거래되고 있었다. 이런 상권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 최풍원의 북진여각이었다. 북진여각은 인근 지역 물산의 집산지 역할을 하며 객주들과 보부상들을 통해 도매와 산매도 함께하고 있었다. 북진여각의 상권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양·영춘·매포·수산·덕산·한수·서창·제천에는 간혹 장이 열리기는 했지만 홀로 존립하기에는 사람이나 물산이 적었다. 이런 북진 지역을 경강상인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물건을 팔고 특산물을 수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북진여각의 최풍원과 도중회 객주들만 뭉쳐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경강상인들이 특산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북진여각의 최풍원 뿐이었다.

“북진도중회 여러 객주님들, 장사꾼이 금 잘 쳐준다하고, 내 물건 사겠다하는 사람 있으면 당연히 팔아야겠지만 소소한 물건이야 그렇지만 시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물산은 우리 회원끼리 담합을 한 후 경상들에게 넘겨야 할 것이오!”

최풍원이 도중의 모든 객주들에게 사사로이 경상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온 물산을 넘기지 말 것을 단속했다.

“임방 객주들이야 제 물건 내놓지 않으면 될 일이지만, 우리 상전 객주들 중에도 경상들 물건을 받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는 잡화전이나 어물전은 어찌하란 말이오?”

장순갑이 최풍원의 말끝에 토를 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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