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방책이라두 있으신가, 최 행수?”

여전히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영춘 심 객주가 물었다.

“이번에 경상들이 싣고 올 물산들은 주로 곡물이오. 여러 객주들도 다 알겠지만 지금 청풍에서 제일 절실한 것은 먹을거리요.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비싼 쌀보다도 값이 싼 잡곡을 많이 싣고 올 것을 주문했소. 그러니 이들은 주로 잡곡을 싣고 오지 않겠소? 수요가 많지 않은 쌀은 어느 정도 선에서 흥정을 하겠지만 잡곡 값은 북진난장에서 형성되는 시세에 맞춰줄 생각이오. 그러니 우리 북진난장의 곡물 시세를 조작해야겠소!”

“그러다 경상들이 알게 되면 모든 게 어그러지는 것 아니오?”

“그러니 은밀하게 해야지!”

만약 경강상인들이 자신들의 곡물을 헐하게 구입하기 위해 북진여각에서 가격을 조작한 것이 알려진다면 난장은 끝이었다. 경강상인들의 물건 없이는 장마당 구색은 갖춰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시세 조작은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켜 경강상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해치워야 했다. 그러려면 북진도중 산하 객주들과 상전 주인들, 보부상들이 모두 하나 되어 움직여야 했다.

“지금부터 심 형과 성두봉 객주, 우홍만 객주는 여각의 곳간 문을 열고 장마당 상전에 쌀과 잡곡을 풀도록 하시오. 그리고 곡물전 주인들에게 값을 정해주고 물량이 달리더라도 절대로 그 이상은 받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주시오!”

최풍원 대행수는 북진난장의 곡물가를 낮춰놓은 다음 경강상인들과 타협을 할 작정이었다. 지금 북진여각의 곳간에는 특산품은 충분히 있었지만 미곡을 비롯한 곡물은 모두 모아야 이백 석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목계에서 만난 경상 유필주의 배에만 해도 미곡만 삼백 석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같이 선단을 이뤄 올라올 경강상인들이 가지고 올 곡물을 합치면 청풍 읍성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넘기고도 몇 달은 더 먹을 양이 될 터였다. 최 대행수는 곡물 값을 조작하여 이들 곡물을 도거리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청풍 인근 고을민들에게 값싸게 팔아 주린 배를 채워줄 요량이었다.

“만약 경상들이 영남이나 강원도 상인들이나 각지에서 온 보부상들에게 직접 산매를 한다면 어쩌겠소이까?”

매포나루 박노수 객주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하진 못할 거요! 왜냐하면 우선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소. 그리고 배에 실려 있는 물량이 워낙 많아 우리 도중을 통하지 않는다면 청풍 인근에서는 그것을 살 상인도 없소. 만약 그래도 그들이 산매를 한다면 장세를 물릴 것이오. 이미 청풍관아 이현로 신임부사가 나와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사안이오!”

최풍원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들이 만약 곡물값에 불만을 품고 배에서 물산을 하역하지 않는다면 어쩌겠소이까?”

매포 박 객주도 걱정되어 하는 말이었겠지만 그는 계속해서 ‘만약’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최 대행수를 몰아붙였다.

“객주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여유가 없소. 그것보다는 당장 닥친 당면과제부터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하오. 그러니 날 믿는다면 내 지시대로 즉시 이행해주시오!”

최 대행수가 더 이상의 논의를 접고 도중 소속의 객주들에게 할 소임을 정해주기 시작했다.

“임구학 객주와 임칠성 객주는 임산물들을 맡아주시오. 난장의 상전은 물론 장꾼들이 가지고 나오는 소량의 약초들이라도 경상들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단속을 해주시오. 특산물도 마찬가지요. 박노수 객주는 차대규 객주와 피륙과 장꾼들이 가지고 나오는 돗자리를 모두 사들이도록 하시오!”

“장터를 너무 말려놓으면 경상들이 의심을 하지 않을까유?”

“그러니 상전 객주들과 여러 객주들이 장마당 돌아가는 형편을 봐가며 수급 조절을 잘하란 얘기요.”

“대행수 어른, 각지에서 온 상인들과 보부상들이 장꾼들과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은 어찌 할까요?”

이번에는 제천 차대규 객주가 소상인들의 직접 거래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소상들은 신경 쓰지 마시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한 생업에 불과하니 그냥 두도록 하시오.”

최풍원의 말처럼 그저 가솔들을 건사하기 위해 장마당을 도는 소상인들이 거래하는 물량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의 물량은 보부상들의 등짐에 의해 분산되어 북진여각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