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한남대에 감사편지 보낸 중증장애인 재일동포 임성미씨

북한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한국 유학의 꿈을 이뤘던 조총련 출신 재일동포 임성미씨(27)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일본 오가야마(岡山)의 집에서 모교인 한남대에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2002년 중증 장애를 극복하고 한남대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한 임씨는 조총련계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북한 국적을 갖고 있었으나 지난 96년 한남대에서 열린 한·일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돼 한국유학의 꿈을 키워 왔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98년 북한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해 화제가 됐다.

다음은 본인의 동의를 얻어 공개한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3년전에 이곳을 졸업한 임성미입니다. 당시에는 휠체어로 학교를 누비고 다녔던 학생이었는데 이젠 대학에는 저를 알아보는 학생은 졸업해서 거의 없을 것입니다.

평소 연락하고 지내던 직원 선생님을 통해 이렇게 다시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어서 반갑네요. 지난 2003년 졸업 후 한국문화를 알리고자 일본에 돌아가 반년 후 운전면허증을 따고 1년 후에는 어린이집 시설에 취직도 됐어요.

그곳에는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장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곳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사무직 일을 하다가 점차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면서 학과에서 배운 전공을 살릴수가 있어 좋았지요. 꼬마들에게 한국의 전래동요나 노래를 가르쳐주면 흥미를 갖고 잘 따라 부르더군요.

요즘은 교포친구들의 모임에도 참가하고 ‘어린이 번역회’라고 한국의 아동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계단이 많아 휠체어 타고 강의 듣는게 참 어려웠는데, 이런 저를 위해서 학교가 애써 경사로를 만들어 주시고, 강의실 문턱을 없애주셨지요. 아직 미흡한 점이 많겠지만 장애를 가진 제 후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니 너무 기쁩니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제가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것 외에는 동일한 인격체라는 점을 잊지않도록 배려해 준 친구들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땐 귀가 어두운 절 위해 옆 친구가 교수님 말씀을 필기해주고 한국말이 서툰 저를 도와주었지요. 또한 동아리 활동하면서 준비했던 무대 발표회와 휠체어를 타고 지리산 정상에 올랐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그 때 전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살아갈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사회적인 복지시설이나 취업 등이 미흡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모교에서 그랬듯이 정부에서도 차츰 개선을 해나가겠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인 편견이 가장 문제일 것입니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모아지는 관심을 평소에 조금씩 나눌 때 모두가 밝게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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