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에는 을순이라는 소문난 왈패가 있었다. 을순이는 주로 방물장사나 잡화를 하는 아낙들을 대상으로 마음에 드는 노리개가 있으면 갈취를 하고 아무 주막집이나 들어가 제 맘대로 무전취식을 했다. 을순이가 앵두갈보네 주막집으로 들어갔다.

“언니, 국밥 한 그릇 말아!”

“그래 을순아, 쬠만 기다려! 저어기 손님부터 갖다 주고 말아줄테니.”

“당장 말아! 배 고프단 말야!”

“알았다, 알았어!”

앵두갈보도 만만찮은 성격이었지만 을순이가 강짜를 부리자 아뭇소리도 못했다.

“아니, 뭐 저런 년이 있어?”

북진에 처음 와 을순이를 모르는 무뢰배나 장꾼 중에는 곱상하게 생긴 계집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고는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며 불끈 나서곤 했다.

“야, 저년 건들지마!”

“왜?”

“괜한 벌집 건드리지 말고 술이나 먹어! 저년은 무뢰배들도 건드리지 않는 독종이여.”

“그래봤자 눌러주는 계집 아니겠냐?”

“좋은 말 할 때 말 들어!”

“병신들! 좇 대가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장사꾼이 호기를 부리며 을순이에게로 다가갔다.

“계집년이 집안에 들어앉아 국으로 살림이나 할 일이지, 어디 바깥으로 쏘다니며 거정을 피냐?”

장사꾼이 훈계를 하며 호통을 쳤다. 을순이는 장사꾼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은 채 국밥만 열심히 퍼먹었다.

“이년이 남자가 묻는 데 무시를 해?”

장사꾼이 핏대를 올리며 을순이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아무리 소문난 왈패라도 여자는 여자였다. 힘으로 밀어붙치는 사내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장사꾼이 을순이의 머리채를 신장대 흔들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당하기만 하던 을순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칼눈으로 장사꾼를 째려보았다.

“이 년이 어디다 대고 눈깔을 치뜨는 거여?”

장사꾼이 눈을 부라리며 겁박했다. 그러자 갑자기 을순이가 저고리를 벗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주막집 마당에서 요기를 하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을순이의 통통하고 육감적인 젖무덤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치마를 훌렁 걷어 허리춤에 동여맸다. 쪽 뻗은 허연 허벅지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장사꾼이 움찔했다. 을순이가 두 손을 허리춤에 잔뜩 붙이고 장사꾼을 올려다보았다. 장사꾼이 가소롭다는 듯 딴전을 피며 콧방귀를 꿨다. 그 순간 을순이가 땡비처럼 달려들어 장사꾼의 아랫도리를 걷어 올렸다. 느닷없이 급소를 걷어 채인 장사꾼이 비명을 지르며 거시기를 움켜쥐고 겅중겅중 뛰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을순이가 자신이 먹던 국밥 투가리를 집어 들고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고 있는 장사꾼 얼굴을 향해 내려쳤다. 장사꾼의 입에서 허연 이가 땅바닥에 쏟아졌다. 장사꾼이 입을 감싸쥐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래도 을순이는 분이 덜 풀렸는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무뢰배의 등줄기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장사꾼의 적삼 밖으로 붉은 핏물이 배어나왔다. 장사꾼은 거시기와 얼굴, 등짝은 물론이요 온몸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좆도 아닌 새끼가 엉기고 지랄이여!”

을순이가 쓰러져 있는 장사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던 적삼 저고리를 탈탈 털어 입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장터에는 온갖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가는 사라졌다. 그래도 장꾼들은 대수롭게 않게 생각했다.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장돌뱅이들의 삶이 그러했다. 하루해가 저물면 장사꾼들은 타관에서 하루를 정리했고, 이튿날 해가 뜨면 또다시 타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참, 너네 둘째와 우리 셋째가 정월이 귀 빠진 달이지”

“그래, 그놈도 많이 컸지?”

“이번에 집에 들르면 지게목발이나 하나 맞춰 줘야지.”

“벌써 그렇게 됐는가?”

“니 애를 보면 알 것 아닌가?”

흥섭이와 재복이는 평생을 함께 떠돌아다닌 드팀장수였다. 평생을 타관으로 장마당을 떠돌다 보니 집안일도 모두 마누라에게 떠맡긴 상태였다. 장돌뱅이들 중에는 부근 향시를 돌며 달포에 한 번은 집에 들르는 장사꾼도 있었지만, 원거리 순력을 다니는 장사꾼들은 일 년에 서너 차례가 고작이었고, 심지어는 정월에 집을 떠나 해를 넘기고 세밑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들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장사를 같이 다니는 동료들끼리는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짝을 맞춰 향시를 도는 동무들끼리는 자식들이 같은 달 생일을 맞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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