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예끼, 이 사람아! 나무면 다 같은 나무고 불에 들어가면 타버리기 마련인데 무슨 세 몫이고 나무에다가 봉을 끌어다 붙이는감?”

하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양반이 타박을 했다.

“사람 종자에도 나리처럼 양반 씨가 있고, 지들같이 들 여문 쭉정이 상놈이 있듯 나무도 여러 질이 있습죠. 검불, 북대기, 갈비, 싸리나무, 풍나무, 잔솔나무, 참나무, 고주박……, 이 중에 왕은 참나무 장작입죠. 산중 왕은 호랑이요, 나라 왕은 임금이요, 나무 중 나무는 참나문데 저 나뭇짐이 바로 왕 중의 왕 참나무 장작입니다요.”

“허허 그 사람 입담은 조조 뺨 치겄네. 그래 그 나뭇짐 전부 몇 짐인가?”

양반은 나무장수 흥수의 입담에 빠져 흥정을 걸어왔다.

“넉 짐에서는 조금 빠지고 석 짐에서는 넉넉하구먼요. 나으리께서 쉽게 팔아주시니 석 짐 값만 치겠습니다요.”

“그렇게 함세!”

나무장수 흥수가 지게를 진 채 소를 몰며 양반 뒤를 따랐다.

양반집은 강 건너 청풍읍내 관아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흥수는 양반이 알려준 헛간에다 차곡차곡 장작을 쌓아놓고는 일을 마쳤음을 고했다.

“내 자네 일하는 것을 보니 믿을 만하구먼. 다른 나무꾼들은 와르르 마당에 쏟아놓고 돈을 받자마자 그냥 줄달음을 치는 데 자넨 성심으로 일을 하는구먼. 사람 마음 씀씀이가 그러면 물건도 빈틈이 없겠지. 앞으로 우리 집 땔감은 자네가 대놓고 해줬으면 하네.”

“고맙습니다요, 나으리! 당연한 것을 그래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구먼유.”

나무장수 흥수는 양반의 칭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굽신거렸다. 일찍 나무가 팔렸으니 집이 있는 한버들까지 서둘러 가면 한 짐을 더 북진난장으로 가져다 팔 수도 있었다. 집에 있는 어린 자식들이 떠올랐다. 오늘은 나물죽이라도 곡식 알갱이가 잔뜩 들어있는 죽을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나를 듯 가벼웠다.

난전에는 예전에 비해 행상과 노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들의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다. 나무장수 흥수도 원래는 본업이 남의 농토를 부쳐 먹고 살던 소작인이었다. 그는 천성이 부지런하여 남의 소작을 부치면서도 틈틈이 품을 팔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도 점차 힘들어져 갔다. 땅은 늘어나지 않고 그대로인데 소작을 부치려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나자 지주들은 횡포를 부렸다. 소작료는 해마다 오르고 관아에서는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징수하니 죽어라 땅을 파도 먹을 양식은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나무장수였다. 밑천도 없고 상술도 없는 흥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전방 앞에 나뭇짐을 내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려고 하면 주인은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개 쫓듯 몰아냈고, 장마당을 돌며 텃세를 부리는 무뢰배들은 장마당을 휘돌아치며 자릿세를 내라며 을러댔다. 장세를 낼 돈이 없으면 무뢰배들은 흥수의 나뭇짐을 마치 제 것 마냥 차지하고 앉아 제멋대로 강매해서 자릿세를 뜯어가기도 했다. 무뢰배들은 대체로 장마당을 중심으로 인근에 사는 건달들이었다. 장마당에는 그 지역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고장의 장꾼들이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이들은 자기 마을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을 겁박하여 돈과 물건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권한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타지의 장꾼들은 을러대는 그들의 기세에 겁이 나거나 귀찮아서 억지춘향 격으로 자릿세를 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규모가 제법 큰 상단이나 보부상단들은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이들 상단이나 보부상단들 틈에는 광대패들과 사당패들도 짝을 이뤄 함께 다니곤 했다. 광대패나 사당패는 장마당에서 놀이판을 벌여 구경꾼들을 끌어 모으고 상인들은 이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자리에는 쉬파리 똥 빨듯 남의 등을 처먹는 족속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북진여각의 동몽회도 애초에는 무뢰배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향시가 열릴 때마다 자릿세를 뜯어먹던 건달들이었다. 그러던 것을 북진여각 최풍원 대행수가 북진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행패를 부리던 도식이 일당을 제압하고 설득하여 동몽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임방 출범과 동시에 도중회의 의결을 거쳐 정식으로 여각의 일원이 되었다. 장마당에서 설쳐대는 건달들 중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 중에는 여자도 있었다. 건달들은 남자를 무뢰배, 여자를 왈패로 구분지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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