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춤을 춘 대가로 남성의 목숨을 요구한 여성, 살로메

세례자 요한의 목숨을 요구했던 것은 살로메가 아닌 그의 어머니
살로메 어머니 헤로디아가 남편의 형이자 왕인 헤로데와 결혼하자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고 수차례 말해
헤로디아는 이런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죽이려 했으나 뜻을 못 이룸
이후 살로메가 연회에서 춘 춤이 맘에 든 왕이 소원을 말하라 하는데
살로메는 어머니에게 의견을 묻고 요한의 목을 요구해 요한은 참형
성경에서 요한을 죽인 것은 어머니의 의지인데 원전과 다르게 포장
이후 살로메는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로 각인돼

 

‘살로메’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왕인 의붓아버지 앞에서 춤을 주었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장본인이다. 예수의 시대에 일어난 일이어서 신약의 마태오복음(14장 3절~12절)과 마르코복음(6장 17~29절)에 그 전후의 이야기들이 자세히 등장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 구세주의 등장을 설파하며 자신은 그의 신발끈을 묶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여 자신을 낮추었던 성인(聖人)이다.

그러한 그가 살로메에게 무슨 원한을 샀기에 목숨을 빼앗기는 참형을 당했던 것일까. 신약의 두 복음서에서 전하는 살로메의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 그의 목숨을 요구했던 것은 살로메가 아니라 왕의 부인인 그의 어머니였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 복음은 동일하게 이 사전의 전말을 전하고 있다. 더 자세하게 기술된 마르코 복음의 해당 구절을 보자. 긴 인용이지만 살로메의 사연을 알아두려면 반드시 원전을 읽어둘 필요가 있다.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폼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레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고 너에게 주겠다.”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하고 일렀다.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기시를 바랍니다.”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무덤에 모셨다.”

위의 내용은 세례자 요한의 목숨을 원한 것이 살로메가 아니라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였고, 살로메의 춤에 매료된 의붓아버지는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살로메는 어머니에게 자문을 구해 세례자 요한의 목숨을 청했던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왕비 헤로디아가 세례자 요한을 원수로 여긴 이유는 복음서에 기술된 바와 같이, 왕 동생의 부인이었지만 남편의 형인 왕과 새로 결혼했는데 요한이 이를 비도덕적이라고 공개 비난하자 앙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로메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연회에서 춤을 추었고, 불경스럽게도 의붓딸의 춤에 반한 왕이 모든 청을 다 들어주겠다고 하였으며, 살로메는 어머니에게 물어 청을 말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성경 속에서 남자에게 위협을 가했던 모든 여성들을 구석구석 찾아내 원전의 사연과는 다르게 악녀로 포장하기에 바빴던 19세기에, 살로메는 악녀 중의 악녀로 다시 해석되었다. 살로메의 매혹적인 춤과 무고한 남성의 죽음이라는 소재는,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비단 미술에서 뿐 아니라 문학과 연극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에서는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에 대한 음심을 품었지만 거절당하여 그 복수로 그를 죽인 것으로, 원전인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살로메는 “나는 그대의 몸을 가지고 싶어 미치겠어. 그대의 몸은 아무도 꺽은 적 없는 들판의 백합처럼 희다…(중략) 세상에서 당신 몸보다 더 하얀 것은 없어. 아, 나는 그대의 살을 만지고 싶어 미칠 지경이야”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제발 산호로 만든 페르시아 왕의 활집처럼 붉은 그대의 입술에 키스하게 해줘”라고 요한의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물러서라, 바빌론의 사악한 딸이여. 여자는 이 세상에 악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마라.”라고 분명한 거부와 저주의 뜻을 밝힌다. 그의 거절에 분개한 살로메는 그를 죽여서라고 가지고 싶은 마음에 그의 목숨을 앗아버리고, 급기야는 시체가 된 그의 입술에 키스한다.

▲ 도판 1. 오브리 빈센트 비어즐리, <절정>, 1894

 

와일드의 희곡에 삽화를 그린 영국의 화가 비어즐리(Aubrey Vincent Beardsley)의 <절정>(도판 1)은 이미 목이 잘려진 요한의 목을 붙들고 허공으로 비약하여 그의 입술에 키스하려는 살로메가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머리칼은 메두사의 그것처럼 보이고, 목이 베어져 피를 쏟으며 살로메의 양손에 들려있는 요한의 얼굴은 창백하다. 욕망하던 남성을 죽여서라도 가지는 여인, 죽은 그의 입술에 키스하려는 여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그려졌던 어떤 여인보다 무시무시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은 성경 속에 춤을 춘 소녀로만 기록되었던 살로메의 모습을 천하에 둘도 없는 끔찍한 여자로 돌변시켰는데, 이 글은 대단히 인기를 누리며 유럽 전역에 번역되었고 연극과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살로메는 헤로데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추었고, 그 대가를 약속한 것은 헤로데였으며, 그녀의 어머니인 헤로디아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던 것이 원래의 이야기이다. 성경 어디에서도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에게 음심을 품었다는 이야기는 없었을 뿐더러, 남편의 형과 결혼했던 어머니 헤로디아가 그를 제거하고 싶은 마음에 딸을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의 악녀 대열에서 살로메는 춤을 추어서 왕을 홀렸다는 점과 그 대가로 남성의 목숨을 요구했다는 점이 결합되면서 관능성과 잔혹함이 결합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 도판 2. 로비스 코린트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의 <살로메>(도판 2)도 비어즐리와 비슷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 속에서 살로메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완숙한 여인으로 그려졌을 뿐 아니라, 앞가슴을 노출하고 있어서 헤로데 앞에서 추었다는 춤이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의 목을 자른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남성이 그녀의 앞에서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머리 위로 요한의 목이 담겨 있는 쟁반을 살로메에게 바치고 있는 남성은 무릎을 꿇고 있으며, 오른쪽의 두 남성은 목과 분리된 요한의 피투성이 몸을 들어 옮기고 있다. 살로메는 주렁주렁 반지를 낀 손으로 죽은 요한의 눈을 벌려보고 있다. 한편 뒤쪽에 공작 부채를 든 무표정한 여인과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는 여성이 등장하고 있어, 마치 이 그림 속의 주제는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춤추는 소녀에서 음탕한 악녀로 변신한 살로메의 이야기는 더 많은 문학작품들과 화가들의 그림들 속에서 수없이 등장하였고, 지금까지도 악녀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살로메의 변신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감성의 조류이기도 했던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