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장터 국밥집에는 요기를 하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장막 안에는 빽빽하게 멍석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좁고 길다란 널빤지로 만든 목로가 놓여 있었다. 옹색한 장소에 얼마나 사람들이 달박거리는지 머리통만 보일뿐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국밥집 장막 안으로 계속해서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제각각 불러대는 손님들의 고함 소리에 국밥집 아낙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장터는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모처럼만에 만난 지인들과 구수한 국밥에 탁배기 한 잔이면 그동안 있었던 집안 이야기에 세상 구르는 이야기까지 몽땅 쏟아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장은 뒷전이고 오가는 이야기에 정신이 빠져 장보는 것도 잊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허다했다. 또 상인들은 장터 돌아가는 정보를 얻어듣고 거기에 맞추어 새로운 장사를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은 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해!”

약초상 김창배는 국밥을 앞에다 놓고 다짜고짜 한탄이었다. 얼마 전 도거리 해 놓은 마늘 값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이젠 원금에서도 많이 밑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본전 생각이 나서 팔아버릴 수도 없었다.

김창배는 장회객주 임구학의 밑에서 약초 장사법을 배우며 장도 보러 다니는 중간상이었다. 산지에 가서 약초를 구매해 임구학의 집으로 가져가 구전을 먹는 식이었다. 그러던 창배가 지난 이월 말쯤 단양장에 간 것부터 일은 꼬여가고 있었다. 약효가 좋기로 이름이 자자한 대전리 인삼 파시에 갔다가 만난 약초상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가 ‘요즘 단양에 질 좋은 약초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창배도 일·육장이 열리는 향시에 맞춰 단양장으로 갔다. 임 객주는 장으로 가는 창배에게 복령·당귀·자초를 주로 구매하고 그것이 없으면 그냥 돌아올 것을 일렀다. 단양 역시 뱃길이 열려야 물길을 따라 사방에서 장꾼들이 모여 성시를 이룰 텐데 물길이 열리지 않아 장이라고 할 것도 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겨우내 강물이 얼어붙어 있어 향시에 나온 물건들도 이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뿐이었다. 그러니 장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창배가 장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복령같은 귀한 약재는 씨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 눈에 띄는 약재들도 상품으로보다는 그저 집에서 끓여먹을 정도의 지질지질한 것들이었다. 귀한 약재 소문이 대전리 같은 깊은 산중까지 소문이 났다면 이미 그 전에 누군가 모두 도거리를 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어야 했다. 창배는 임구학이 이른 대로 그쯤에서 미련을 버리고 그냥 돌아왔더라면 지금의 곤경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약초를 구하지 못한 창배가 장마당을 배회하고 있을 때 남새전에 걸린 마늘이 눈에 들어왔다.

단양은 예전부터 마늘이 유명했다. 땅이 석회토에다 배수가 잘돼 마늘이 단단하여 다른 지역의 마늘에 비해 맛이 뛰어났고 저장성 또한 뛰어났다. 여타 다른 지역의 마늘들은 겨울이 되면 썩기 시작해 봄이 오기 전 모두 썩어 지금쯤은 남아있지를 못했다. 그러나 단양 마늘은 봄이 와도 쇳소리를 내며 탱탱하게 남아 있었다. 또한 아리고 떫은맛이 적어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에 반했다. 단양 마늘은 수확시기부터 품귀를 이룰 정도였다. 창배는 어차피 빈 몸으로 돌아가는 길에 금이 맞으면 마늘이라도 사가지고 돌아가 차액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이면 겨우내 쟁여두었던 마늘도 다 소비되었을 테고, 이제 봄이 되면 나물들이 지천으로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 마늘도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생각이 퍼뜩 스쳤다. 창배는 약초를 구입할 돈으로 마늘 오백 접을 일백 냥에 사가지고 나는 듯 돌아왔다. 그리고는 수산장, 덕산장, 한수장을 돌며 시세를 알아보니 접 당 이전 닷 푼은 능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팔아도 스물다섯 냥, 쌀로 치면 여섯 가마가 넘는 이득이 고스란히 남는 일이었다. 창배는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운만 맞으면 곱절 장사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마늘을 사서 횡재를 한 셈이었다. 약초를 사지 못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남새전 상인들이 눈독을 들이며 흥정을 했지만 창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북진에 난장이 틀어져 상인들이 몰려들면 몇 곱절을 더 받을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마늘통 숫자에 있었다. 날이 풀리며 엮어놓았던 마늘통이 자꾸만 빠져 새로 묶기 위해 마늘 접을 푸니 대가리가 떨어진 놈에 자루만 달린 놈을 가리고보니 통수도 모자라고 상한 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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