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들의 손에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물건들이 들려 있었다. 집에서 필요한 물품을 난장에서 바꾸기 위해서였다. 장터가 먼 마을이나 깊은 산중 마을에는 보부상들이 순력을 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오는 물품은 종류도 빈약했고 질도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보부상들에 비하면 발품만 조금 팔아 난장에 나오면 온갖 다양한 물품들을 값싸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 구경만 해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북진난장에서는 장구경 나온 사람들에게도 덤으로 내놓은 물건이 많다고 입소문이 퍼져 물건은 사지도 않으면서 날건달처럼 휘적휘적 배회하는 구경꾼들도 많았다.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난장에는 별별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특히 장꾼들 사이에 벌어지는 자리다툼은 대단했다. 장사는 문턱이 낮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한 발짝이라도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봐, 앞을 가리면 어떻해? 늦게 왔으면 뒤로 가든지 다른 곳으로 가야지 이게 무슨 경우랴?”

“미안합니다. 같이 좀 먹고 삽시다!”

상전 앞 난전에서는 목물을 파는 운달과 죽물을 파는 칠봉이 사이에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밤잠도 설치고 나와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물건을 풀어놓은 운달이 앞에 늦게 나온 칠봉이가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펼치려 하자 두 사람 사이에 옥신각신 싸움이 벌어졌다.

장사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목을 잡는 것이었다. 좋은 자리는 장사 수완 못지않게 중요했다. 목에 따라 수입은 천양지차였다. 어떤 장사꾼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날부터 한데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니 장사꾼들 사이에 좋은 목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멱살잡이를 하기 일쑤였다.

“내 배가 닷 발은 들어갔는 데, 남 배지 생각하게 됐수?”

“그러지 말고 없는 사람들끼리 도우며 삽시다.”

“글쎄, 소용없다니까 그러시네. 딴 곳으로 가시우!”

“그 양반 되게 빡빡하게 구네. 정말 안 되겠수?”

“안 돼!”

“드런 놈!”

사정을 하던 칠봉이가 도무지 사정을 봐줄 가망이 없자 운달이에게 욕을 해댔다.

“뭐시여!”

잘못한 것도 없이 생욕을 얻어먹은 운달이가 쌍심지를 켜며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쌈박질을 하는 데도 어느 한 사람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장마당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다반사였다. 오히려 사람들은 싸움 구경을 히히덕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힘이 남아도는구먼!”

“아침부터 눈요기 한 번 잘하는구만!”

두 사람이 개처럼 뒤엉켜 땅바닥을 뒹굴며 싸움을 해도 사람들은 강 건너 불 보듯 말했다. 그때 난전 앞 상전에서 붙박이 장사를 하는 박종달이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섰다.

“이 사람들아! 없는 사람들이 쌈할 새가 어딨노? 그럴 힘 남았걸랑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상전 주인 박종달이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섰다. 박종달은 원래 경상도 순흥 사람이었다. 박 씨가 고향을 떠나 생면부지인 청풍 땅으로 온 것도 절박한 상황에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어느새 십수 년이 훌쩍 넘어간 오래 전 일이었다. 박씨의 아비는 잡놈 중에도 상잡놈이었다. 투전에 술판에 그것도 모자라 첩질까지 세상에 온갖 추저분한 짓거리는 찾아다니며 일삼는 그런 씨종이었다. 가장이면서도 명절 때나 한 번씩 집에 들러 하나씩 만든 아이만 여덟이었다. 새끼들은 대추나무 연 걸리듯 싸질러놓고도 곡식자루라도 하나 놓고 가기는커녕 외려 집을 떠날 때는 식구들 먹을 양식조차 퍼가는 파렴치한이었다. 파렴치한이란 말도 아비에게는 과분한 대접이었다. 박 씨는 그런 집에 맏이였다. 박 씨가 가족들과 헤어져 고향을 떠나게 된 것도 오롯이 아비 덕분이었다. 아비가 투전판에서 빚 얻은 돈을 날려버리고 그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감당을 하지 못하고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뒷돈을 댔던 꼭지 놈이 어린 박 씨를 잡아다 행세께나 하는 부잣집에 넘겨버렸다. 그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좋은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집구석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박 씨는 아비가 져놓은 빚을 갚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에 죽을 고생을 참아가며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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