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근 시인 ‘공중에 갇히다’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연민과 헐렁한 마음과 발이 저리도록 온기를 쪼아 쓰디 쓴 기침을 태운 자화상들이 수록된 김덕근 시인의 시집 ‘공중에 갇히다’(푸른사상 시선 112)가 출간됐다.

고통의 통점으로부터 빚어낸 시인의 시편들은 담담하고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이다. 특히 관통의 점을 얼마나 매달아야 하는지 사색하고 기억하는 지문은 진하다.

시집은 전체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자화상 / 바른손에게 / 호마이카 밥상 등을 비롯해 제2부 알아서 봄 / 복면골목 / 천수천안 고양이 / 더딘 여름 등, 제3부 무심천 / 전작을 기다리며 / 겨울 문의(文義) / 한 장의 나무 등, 제4부 망월 / 태엽을 돌려줘 / 귀가 / 말이 떠나는 시간 / 나비와 소식 / 우암산에서 등이다.

정재훈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쓰는 일’이라는 게 어찌 보면 정해진 답이 없으며, 상정해둔 목표치라는 것도 없고, 따라서 이를 두고 ‘완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조차 없다”며 “한 권 시집은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나온 끊임없는 질문과 함께, 절망에 가까운 고민들의 연속적인 과정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정 평론가는 “시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김덕근 시인은 ‘두 세계’를 모두 아는 인간의 대표자로서 낯선 세계로부터 흘러나온 말을 지금도 기록하고 있으며, 또 ‘시’의 운명에 공명(共鳴)하려는 자로서 메마르고 황량한 뭍에서의 일상을 견디고 있는 중”이라며 “시인의 곤경은 그를 더욱 시인답게 하고, 그 고통과 불면의 시간은 결국 그가 쓰고자 하는 ‘시’의 가장 건실한 ‘살(肉)’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곤경에 처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동료 함기석 시인은 “김덕근 시인의 시는 통점(痛點)이 낳는 기억의 지문들이다. 가을바람이 적막한 들길에 뿌려놓은 녹슨 몸의 잔해이고 마음의 아픈 비늘들이다. 그의 기억은 대부분 적막과 허기의 풍경들, 그리움을 낳는 일몰의 말들로 채워진다”며 “그의 시는 연민과 회한을 살로 간직한 청주 전(傳)이고 외전(外傳)이다. 우암산은 자궁을 은폐한 시원적 공간이고 무심천은 꽃비 재우며 걷는 천근 미륵의 몸이니 바람, 달빛, 갈대, 철새 등 만물은 모두 시인과 가족관계고 천수천안 관음보살”이라고 말했다.

함 시인은 또 “그렇게 그는 질긴 땅, 기침하는 세속의 골목을 돌고 돌며 몸살 앓는 꽃들을 만나고 가슴에 벼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가면의 나를 반성하고 말라버린 인간의 눈물을 그리워한다. 산과 들을 홀로 떠돌며 시인은 오늘도 하늘이 땅을 깨우며 울릴 북소리, 광명진언(光明眞言)을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김덕근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1995년 ‘청주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의 장소성과 구술 이야기에 빠져 사람들을 만나 글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몇 권의 책을 펴냈고 현재 ‘충북작가’ 편집장, 엽서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화상

 

연민을 고르는 것이냐

아니면 으스름 달빛으로

헐렁하게 마음 하나 두는 것이냐

낯선 사내의 허리는 굽어 있고

계절은 배달되고 시간은 촘촘하다

성대한 활자의 탄력들

지평선의 변명이 곤궁하니

발이 저리도록 온기를 쪼아

쓰디쓴 기침을 태우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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