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운희는 본래 주막집에서 들병이 노릇을 하다 뒷등이네를 따라나서며 방물장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장사는 뒷전이었다. ‘버릇 굳히기는 쉬워도 버릇 떼기는 힘들다’더니 운희가 그 장단이었다. 장사를 배우려 하기보다는 가는 곳마다 남정네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몸을 팔기까지 했다. 종당에는 지난여름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한이댁을 끌고 장사꾼들 술자리에 끼어든 운희가 하도 질펀하게 노는지라 남정네들이 두 사람 모두를 들병이로 오해를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여한이댁은 몸을 버렸고, 그날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 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집을 가지 못하고 있었다.

“강에 배 지나갔다고 표시 나남유? 작은 성님은 그까짓 것을 가지고 뭘 그리 고민하우?”

운희는 여한이댁을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했다. 하기야 그 일이 없었더라도 여한이댁이 집에 있을 자리는 없었다. 여한이댁의 남편은 이미 그 자리에 다른 여자를 들여다 앉혀놓고 있었다.

“여한이댁은 어째 이리 손도 곱다우!”

국밥을 떠먹던 영남 상인이 슬쩍슬쩍 여한이댁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한이댁! 나랑 같이 농사 한 번 안 지어 볼테여?”

영남 상인이 음흉한 눈빛으로 여한이댁을 쳐다보았다.

“아니! 이 양반이 어디다 수작을 거는 거요?”

여한이댁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 부쳤다.

“어디다 손을 대고 지랄이여!”

뒷등이네가 여한이댁의 손등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영남 상인의 손을 매섭게 내리쳤다.

“누님 손매를 보니 아직도 팔팔하구먼!”

“이전엔 내 손도 이래 고웠지.”

뒷등이네가 포동포동한 여한이댁 손을 쓰다듬으며 푸념을 했다.

“그런데 큰성님 손이 왜 이렇게 됐우?”

운희가 뒷등이네의 쭈글쭈글한 손등 가죽을 잡아 늘리며 장난을 쳤다.

“이년아, 세월에 장사 있더냐? 네년은 언제까지나 정월 초하루 줄 아냐?”

“그래도 난 큰성님처럼 늙지는 않을거유.”

“이년아, 늙는 데도 종자가 따로 있다더냐? 감았다 뜨면 서산 해여. 산다구 할 것도 없어. 너도 금방이여!”

“맞구먼. 그렁께 운희 니도 한 해라도 젊었을 적에 자꾸 보시를 하거라.”

영남 상인은 노골적으로 운희를 희롱하고 있었다.

“암만 궁해도 난 늙다리는 싫소!”

“늙은 말이 콩을 더 잘 주워 먹는 것도 모르냐?””

“늙다리는 질겨 먹느라 힘만 들지 영양가도 없고, 난 사각사각 씹는 맛이 좋은 성난 고추가 젤로 좋더라.”

운희는 영남 상인들이 건네는 음담을 예사로 받아넘겼다.

“그럼 질기고 성난 고추 맛 좀 볼 테여?”

“저렇게 큰소리 치는 사내치고 벗겨보면 풋고추더라.”

“뭣이여!”

사내들의 낯 뜨거운 음담패설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운희의 능수능란함에 말문이 막혀버린 영남 상인의 얼굴이 약 오른 고추처럼 빨개졌다. 들마루에 두리기로 앉아 술을 마시던 보상들이 어떤 놈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며 웃고, 밥숟가락을 떨어뜨리는 놈에, 복장을 두드리는 놈에, 가슴을 치는 놈에 각양각색으로 박장대소를 했다.

이런 상인들이 사시사철 객지를 떠돌다 보면 주막에 방이 없어 한 방에 혼숙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또 장마당을 떠도는 상인들 중에는 정해진 일정한 거처가 없어 마누라와 자식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럴 경우 어쩔 수 없이 남녀가 한 방에 묵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남녀들이 갈라져 모개잠을 자며 그 사이에 발을 쳤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는 ‘남자보부상은 여자보상의 신발을 넘지 못 한다’는 불문율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남녀 사이의 정분은 싹트는 법이어서, 서로 눈이 맞아 벌이는 뜨내기 사랑조차 막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흐이구! 저년은 남정네만 보면 요분질 치고 싶어 안달이 나지.”

뒷등이네가 영남 상인들과 어울려 시시덕거리고 있는 운희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나루터 앞에 있는 앵두갈보네 주막집 앞으로는 난장으로 가는 사람들의 줄나래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인파들 중에는 인근에서 오는 사람은 물론 수 마장, 심지어는 하루거리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사내들은 지게에 아낙들은 머리에 이고 난장이 열리는 북진으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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