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전 노근리의 비극이 전세계에 알려졌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영동군 황간면 주곡리 주민들이 올해 제사준비에 나섰다.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노근리 쌍굴다리로 끌려가 미군의 총탄에 명을 달리한 이들은 모두 177명.(영동군청 접수기준)
학살 당한 날이 음력으로 6월 열하루로 오는 31일 기일을 맞는다.

사흘동안 이어진 학살이었기 때문에 제사도 3일간 이어진다.

주민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온 동네가 제삿집”이라며 “올해는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억울하게 숨져 간 부모님의 원한이 풀리려나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애통해 했다.

세월이 흘러 상당수의 주민이 외지로 나갔지만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는 20여 가구는 해마다 이맘때 제사를 모신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기대를 모았던 한·미 합동조사가 별 성과 없이 끝나고 양국 정부의 사후 대책 마련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어 가족을 잃은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은 더욱 크다.

31일 어머니의 기일을 맞는 정구호(64·주곡리)씨는 “어머니는 미군의 총격이 시작되자 나와 두 여동생을 가슴에 안은 채 몸으로 총알을 막았다”며 “당시 기억은 죽는 날까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같은 날 할머니와 형, 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양해찬(61·임계리)씨도 “어머니도 배에 관통상을 입었고 누이는 한쪽 눈을 잃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며 “할머니는 제사라도 지내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던 형과 동생에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당시 아들을 잃은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정은용(77) 위원장은 “유족들의 가슴에 노근리 상처가 아직 생생한데도 사건 당사자인 미국은 반성은 커녕 위령탑 설치와 장학기금 조성 등을 앞세워 본질을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있다”며 “미국이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고 성의있는 보상에 나설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학살이 시작된 26일 노근리 현장에서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는 합동 위령제를 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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