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악녀: 남성을 힘들게 하는 나쁜 여자들
(3) 영웅 유디트, 악녀로의 변신
구약외전서 적장의 목을 베 민족을 해방시킨 영웅으로 추앙
근대 이후 미술뿐 아니라 문학·연극서 성욕의 화신으로 각색
지오르지오네 ‘유디트’ 육체적 유혹 무기로 삼았음을 묘사
클림트의 작품에선 음탕하고 잔혹한 여성 살인마로 그려져
19세기 이후 대다수 男 작가들은 그녀의 성적 매력에 초점

지오르지오네 ‘유디트’(왼쪽), 클림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
지오르 지오네 ‘유디트’ 1504년경 (왼쪽),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 1901.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영웅은 대개 남성일 것으로 자동 연상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유대인의 역사를 전하는 구약성서 외전에 등장하는 여성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베어 자신의 민족을 해방시켰다. 구약 외전에 따르면, 아시리아 군대가 이스라엘의 국경도시 베툴리아를 침공하여 닥치는 대로 남자를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하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사건이 있었다. 도시는 초토화되어 다른 희망이 없을 것 같던 그 때, 아름다운 과부였던 유디트가 결심을 하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막사를 찾는다. 하녀 한 명을 대동하여 주둔군 대장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이른바 미인계를 써서 적장을 흔들어놓은 후 틈을 타 공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적장 홀로페르네스는 바로 유혹에 넘어가 함께 술자리를 가지고 취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때 유디트는 칼로 그의 목을 베어 함께 데려왔던 하녀로 하여금 자루에 그의 머리를 넣게 한 후 막사를 빠져나와 적장의 죽음을 베툴리아 시민들에게 알렸다. 잔혹한 학살자로 악명이 높았던 홀로페르네스의 처단은 시민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고, 근대 이전까지 유디트는 찬양을 받는 여성 영웅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인 지오르지오네(Giorgione)의 ‘유디트’에는 유디트가 맨발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이미 핏기가 빠져 검푸르게 변해 있고, 그의 표정과 미간에 잡힌 주름은 죽음 당시의 고통을 말해주는 것 같다. 유디트의 모습은 대단히 차분해 보인다.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지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처럼 눈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데 이는 발 아래의 홀로페르네스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대치되었고, 한 손에는 칼이 들려있지만 다시 그것을 쓸 일은 없을 것이라는 듯 칼자루를 살포시 들고 있다. 치마가 찢어져서 한쪽 다리가 훤하게 들여다보이고 신을 신지 않은 맨발로 그려진 것은, 그녀가 여성의 육체적 유혹이라는 것을 무기로 삼았음을 넌지시 알려 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갖추어야 할 미덕으로는 순종과 보살핌 등이 장려되고 용기나 강인함 등이 요구되지는 않았다. 남다른 기개와 강직함, 애국심,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대의를 따르는 결단력 등은 남성들이 가져야 할 미덕이었다. 따라서 나라의 위중한 사태에 직면하여 결단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역할은 주로 남성이 맡아 왔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남성 영웅들에 비하면 여성 영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게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유디트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여성 영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홀로 결단하여 자신의 민족을 구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유디트는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고 난 뒤 바로 그 남성을 살해하는 팜므 파탈로 다시 각색되기 시작한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 적장을 홀로 찾아간 용기는 음탕하고 선정적인 행태로 바뀌고, 영웅적인 모습은 급기야 모두 사라져 성욕의 화신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각색은 비단 미술 뿐 아니라 문학, 연극 등에서도 동시적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헵벨(Christian Friedrich Hebbel)이 1840년에 쓴 비극 ‘유디트’에서는 원래 전하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유디트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성이지만, 그 매력에 기가 죽은 남편이 성적으로 무능했다는 구약 외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가 삽입된다. 늘 탐탁지 않았던 유디트의 남편이 사망했고 과부가 된 유디트는 적장인 홀로페르네스의 건장한 체격에 이끌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으며 그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페르네스가 관계 이후 자신을 차갑고 거칠게 대하자 그에 대한 반감으로, 그러니까 사적 복수로 그를 죽였다는 것이 이 극의 내용이다. 헵벨의 ‘유디트’는 시인이었던 그가 처음 도전했던 극작으로, 함부르크에서 초연되고 이후 베를린에서도 공연이 되어 무명이었던 그로 하여금 독일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게 한 출세작이었다. 19세기에 대유행했던 음탕한 팜므 파탈의 하나로 유디트를 개조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클림트(Klimt), 늘 화려한 배경 속에 아름다운 여성의 에로틱한 모습을 즐겨 그렸던 그가 자신의 소재로 유디트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삶과 죽음, 에로티시즘 안에 있는 파토스의 그림자를 그림 속에 자주 등장시켰다. 따라서 유디트라는 인물을 에로티시즘과 죽음이 결합되어 있는 소재로 변형시키는 것은 그의 작품 전체 맥락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에서 유디트는 상의를 여미지 않아 한쪽 가슴과 배꼽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속이 비치는 옷을 입고 있어서 나머지의 몸도 드러나 보인다. 그녀가 유디트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손에 들고 있는 남성의 머리 덕분이다. 남성은 목이 잘려 눈을 감고 있고, 화면의 반쪽만을 차지하고 있다. 화면의 배경은 금빛으로 장식되어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가 아니면 그저 한 여성의 초상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녀는 지오르지오네의 유디트와는 달리, 어쩐지 구체적인 인물의 초상인 것처럼 대단히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지만, 그 시선은 자신이 죽인 적장의 머리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향하고 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차갑게 웃는 듯하며, 창백한 얼굴에 떠오른 발그레한 홍조와 고개를 뒤로 젖혀 내리깐 눈으로 상황을 음미하는 것 같은 눈빛은, 어딘지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도취된 것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유디트의 상징물인 칼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그림은 칼보다 더한 무기가 그녀의 육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유디트를 묘사할 때 그녀가 누드일 필요는 없었다. 유디트의 행위에서 결정적인 장면은 칼로 적장의 목을 베거나, 잘린 목을 들어 환호하는 군중에게 보여주거나, 목을 자루에 담아 빠져나가는 장면들이었기에, 그녀가 옷을 벗고 있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유디트의 표정 역시 적장에 대한 적개심이나 승리감, 사명감, 혹은 사람을 죽이는 불쾌감 등의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클림트를 비롯해 19세기 이후 많은 남성 작가들은 유디트의 성적 매력에 집중하고 있다. 적장을 유혹했던 그녀의 아름다운 몸과 얼굴, 그리고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 그 매력에 굴한 남성이 치르게 되는 처절한 댓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클림트의 유디트는 구약 외전이 전하고 있는 유디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로 보인다. 그녀에게서 영웅적인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음탕하고 잔혹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유디트는 그야말로 여성 살인마이다. 애국심에 의한 용기와 결단으로 적진을 찾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적장의 목을 베어 민족을 구했던 유디트는 이렇게 천하의 몹쓸 여자, 이런 여성이 쳐 놓은 거미줄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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