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614년, 초나라 장왕은 송나라를 굴복시키고 공로에 따라 상을 내리고자 했다. 이때 군대를 통솔했던 대부 자중(子重)이 욕심을 내어 아뢰었다.

“대왕께서 제게 상을 주시려면 신(申)과 여(呂) 지역의 땅을 하사해주십시오!”

장왕이 이를 승낙하고자 했으나 신하 무신(巫臣)이 나서서 극구 반대하였다.

“자중이 공을 세운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 두 곳의 땅은 북방 경비의 요새이오니 그의 청을 받아들여서는 아니 됩니다.”

장왕이 그 말을 듣고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자중이 청한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자 자중이 은밀히 무신에게 원한을 품었다. 얼마 후 자중은 대부 자반(子反)과 친하게 지냈다. 이는 자반 또한 무신에게 나쁜 감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자반이 서융을 공격해서 그곳의 미녀 하희(夏姬)를 포로로 잡아왔다. 이를 왕에게 바치지 않고 몰래 자신의 첩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자 신하 무신이 이를 힐책하여 무산된 적이 있었다. 이에 자중과 자반은 은밀히 밀약을 맺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무신 그놈을 죽여 버립시다!”

어느 날 무신이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떠났다. 그 사이에 자중과 자반이 무신을 모함하였다.

“무신이 난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가족을 인질로 잡으셔야 합니다.”

장왕이 즉각 무신의 가족을 체포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자중의 계략으로 무신의 가족들은 모조리 살해되고 말았다. 무신이 진(晉)나라에서 이 참변 소식을 들었다. 이를 갈면서 자중과 자반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당장 너희 두 놈을 찢어죽이고자 한다. 허나 그럴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할 뿐이다. 그러나 각오해라. 네 놈들의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때 무신은 오나라로 건너가 그곳에서 전차부대를 만들고 있었다. 이는 오나라 군대를 이용하여 초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이었다. 얼마 후 전차부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쳐들어갔다. 장왕은 자중과 자반에게 명을 내렸다.

“너희 두 사람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오나라 군대를 섬멸하라!”

두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국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오나라 군대는 싸우지도 않고 그저 돌아갈 뿐이었다. 자중과 자반은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여유롭게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오나라 군대가 다시 쳐들어왔다. 자중과 자반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이번에도 오나라 군대는 그냥 돌아갔다. 이렇게 상황이 끝나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곳으로 오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자중과 자반을 괴롭혔다. 보름 사이에 열 번이 넘었다. 그 동안 아무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장왕이 크게 노하여 이 둘을 파직시켰다. 무신은 그렇게 지난 원한을 복수하였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史記世家)’에 있는 고사이다.

분명이피(奔命而罷)란 벼슬을 얻었으나 일이 많아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파직 당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에서 말 안 듣고 제 멋대로인 사람은 다른 묘수가 없다. 일을 많이 갖다 주어 바쁘게 만들면 알아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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