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여한이댁은 뒷등이네와 함께 장사를 다니는 방물장수였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많아 모녀 사이처럼 보였다. 여한이댁의 남편은 떼꾼이었다. 남편은 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면 집을 나가 강물이 얼어붙어도 좀처럼 집에 머물지 않았다. 가끔 집에 객처럼 들러도 마누라 몸에 가시라도 달렸는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남편이 집에 있거나 없거나 생과부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이웃 아낙들은 딴살림을 차린 것이 분명하다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남편이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참을 수가 있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시어머니의 호된 시집살이였다. 시어머니는 여한이댁이 잠시라도 어정거리는 꼴을 보지 못했다. 무엇을 하든 하루 종일 종종거리는 모습을 봐야만 입을 닫는 그런 씨종머리였다. 거기에다 성정 또한 거칠게 타고나 툭하면 손찌검이었다. 그럴 때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대문을 나서고 싶었지만 하나 있는 어린 자식 여한이가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고되도 배만 곯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낙네 혼자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아무리 아등바등 일을 해도 가장인 남편이 돌보지 않는 살림은 나아질 리 만무했다. 급기야 시어머니는 돈을 벌어오라며 며느리인 여한이댁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러던 차에 마을에 장사를 왔던 뒷등이네를 따라 여한이댁도 방물장수로 나서게 되었다. 그것이 두 해 전 일이었다.

“여봐, 뒷등이 누님! 여기 와 해장이나 하소?”

“여한이댁도 오소!”

지난밤에 같이 술을 마시던 등짐장수들이었다. 죽령을 넘어왔다는 그들은 들마루에 앉아 허연 김이 물씬물씬 피어나는 국밥을 정신없이 퍼먹고 있었다.

“뭘 그렇게 허벌나게 먹소?”

뒷등이네가 영남 상인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물었다.

“암만 내 몸뚱이라지만 왼종일 또 일을 시키려면 속에 여물을 채워놔야 될게 아니우?”

뒷등이네나 여한이네 같은 방물장수나 죽령을 넘어온 영남의 등짐장수 같은 이들은 다리가 목숨줄이었다. 이들은 황포돛배에 실려 북진나루에 들어온 물건을 받아 보자기에 싸거나 혹은 지게나 멜빵에 걸머지고 산골이나 시골로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뒷등이네나 여한이네 같은 방물장수는 주로 집안의 안주인들을 상대했다. 방물장수는 안채를 출입해야 했으므로 여자장수가 주를 이뤘는데 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목은 주로 화장품, 바느질 도구, 장신구 따위가 주종을 이뤘다. 뒷등이네는 장사 연륜이 오래되어 벼슬아치들의 마나님들이나 부잣집 부인네들이 단골이라 팔찌, 반지, 귀고리, 목걸이, 노리개 같은 사치품을 주로 취급했다. 여한이댁은 아직도 장사로는 젖먹이 한가지라 단골도 없고 장사 수완도 없어 이고 다니는 물품도 조악한 일용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겨우 입만 그슬리기에도 급급하고 팍팍한 생활이었다.

등짐장수는 부상으로, 봇짐장수는 보상으로 구분하기도 했는 데, 이 둘을 합쳐 보부상이라 했다. 보부상들은 무거운 짐을 지거나 메고 다녀야 했으므로 모두가 남자였다. 이들 중 물건을 등에 지고 다니며 파는 등짐장수들은 나무로 만든 그릇, 곽, 토기, 자기, 연초, 소금과 해산물, 꿀, 누룩 초석, 초혜, 청마, 바가지, 무쇠로 만든 기물, 각종 죽물과 방망이와 홍두깨 같은 목물로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된 비교적 부피가 크고 조잡한 일용품들과 농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취급했다. 이에 비해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메고 다니며 파는 봇짐장수들이 취급하는 물목은 상례 때 입는 오복, 짐승들 가죽, 뼈로 만든 물건, 끈, 칼, 모자류, 주단, 포목, 유기, 지물, 연죽, 필묵, 금은동으로 된 장신구처럼 기술이 정교한 세공물로 고가의 물품이 많았다.

“성님들! 남녀가 유별한데 식전부터 마주앉아 무신 대작이우?”

운희였다.

“이년아! 어젯밤 그렇게 처먹어대더니 네 눈깔엔 이게 술로 보이냐?”

“큰 성님은 무신 심사가 꼬여 식전 댓바람부터 이년 저년이우?”

느닷없이 뒷등이네에게 욕바가지를 얻어먹은 운희가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들마루 귀퉁이에 걸터앉았다.

“이년아, 함부로 몸뚱이 굴리지 말고 간수 잘 혀! 그러다 몸에 병 얻으면 계집은 개똥만도 못 혀!”

“큰 성님은 지만 보면 도끼눈을 뜨고 그러시우?”

“몸 간수 잘 하란 얘기여,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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