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찬 바람이 우리들의 곁에 머물려 할 즈음이다. 어릴 적 털옷을 입은 곰인형 하나 쯤 품에 안고 뜻모를 이야기도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 땐 같이 놀아 주고 얼만큼의 따스함도 공유했을 털이 복실복실한 곰인형. 그 곰인형의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내 곰인형이 되어 줄래?’(미하엘 엔데 글·베른하르트 오버딕 그림)

새 곰인형이었을 때 아이는 곰인형을 태디라 불렀다. 아이가 곰인형을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을 나이가 되었을 때는 여기저기 기워져 있었고, 잦은 빗질에 털도 많이 빠져 있었다. 태디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루 종일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왜 사는지 묻는다. 그리고 자기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온갖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는데 왜 사는지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말하고는 날아가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너무 멍청해 그렇게 어려운 것은 모르니까 다른 동물들한테 물어보려고 길을 떠난다. 지하실 층계에서 생쥐를 만나 난 내가 왜 사는지 알고 싶다고 묻자 생쥐는 이 세상에서 살려면 영리해야 하고, 자기는 사람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치즈랑 햄을 구해 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는데 넌 식구들을 먹여 살릴 줄 모르면 나도 네가 왜 사는지 모른다며 쥐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정원으로 나온 태디는 꿀벌을 만나 또 물으니 난 부지런히 일하기 위해 사는데 넌 부지런하지도 바쁘지도 않고 게으른 아무 작에도 쓸모 없는 곰인형이라며 쏘이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 한다.

남이 뭐라 하든 내 멋대로 살기 위해 사는 되새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아름다움을 잘 가꾸기 위해 사는 백조를 만나 무시를 당하고한다.

바쁘게 수를 세느라 사는 뻐꾸기를 만나 방해꾼 소리를 듣고, 연합이나 동아리 위원회 정당 등을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는 원숭이들을 만나서는 공동체에 들 자격이 없다며 쫓겨난다.

숲이 끝나자 초원에서 만난 코끼리들은 현명하고 위엄이 있어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것은 어려운 질문이고 성급히 결론을 내릴 수 없으며 우리도 그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도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나 다른 걸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 난 톱밥이나 스펀지로 채워져 있다고 하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형은 내다 버리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곰인형은 처음으로 가슴이 아프고 버림받고 싶지 않은 걸 느꼈다. 더 이상 묻고싶지 않아 하염없이 걷다가 초원은 사라지고 사막게 이르러 뱀을 만나 잡혀 먹힐 위기에서 자기는 속이 톱밥과 스펀지로 채워져 있다고 말해 살아난다.

점점 나아지기 위해 사는 나비도 대답을 주지 않고 날아가 버리고, 태디는 다시 혼자가 되어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였다.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맨발로 걸어와 낡은 곰인형 앞에 섰다.

“넌 이름이 뭐니? 곰인형 맞지? 난 곰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어. 내 곰인형이 되어주지 않을래?”

태디는 비록 속이 톱밥이나 스펀지로 채워져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 옴을 느낀다. 그리고 파리에게도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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