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열 칼럼 ]조국 형조판서의 사필귀정(事必歸正)
[이세열 칼럼 ]조국 형조판서의 사필귀정(事必歸正)
  • 충청매일
  • 승인 2019.10.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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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충청매일] 대한민국 제19대 조정은 무려 2개월여 간의 조국 형조판서의 부적절한 제수(除授)를 놓고 사헌부는 물론 전국의 백성과 유생들까지 횃불 봉기로 민란(民亂)의 폭발 직전에 있었다. 다행히 형조판서의 자진 사퇴로 민란 횃불은 사그러지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잔불이 아직 도 남아있다.

그렇지만 유래 없는 전직 형조판서의 정부인(貞夫人)이 의금부에 의해 압송되어 감옥에서 칼을 쓰게 될 현대판 사극이 현실로 전개되고 있다. 사건의 내막은 부인 정경심씨가 주도가 되어 귀한 도련님과 아씨들을 모두 성균관에 들어가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승정원(承政院) 우부승지(右副承旨:민정수석비서관)를 지낸 조국은 수신제가(修身齊家)에 결점이 많아 대간(臺諫:국회)에서 인사 청문회인 서경(署經)을 거쳤지만 부적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신(寵臣) 조국은 왕명에 의해 판서에 올랐지만 당파(黨派) 논쟁는 물론 그 부당함을 알리는 빗발친 상소(上疏)와 백성들의 원성(怨聲)에 삭탈관직(削奪官職)의 불명예에 보다 자진 낙마(落馬)의 길을 택하였다. 

조선시대 서경은 워낙 엄격하여 왕명으로도 어찌할 수 없어 개국 공신(功臣) 같은 경우는 관직을 유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외직(外職:지방직)에 임명하기도 하는 등 오늘날보다도 더 철저하고 엄정한 절차를 거쳐야 관리로 임명될 수 있었다.

19대 조정은 인사 등용 정쟁(政爭)으로 사색당파간 붕당의 소요 속에서 백성들만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고 국론 분열로 자칫 망국으로 이어질 뻔 했다.

승정원과 여당은 조정 신료들을 잘 설득하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책사(策士)로 하여금 간언(諫言)을 해야 한다. 도승지를 비롯한 친위세력들이 세도정치에 발붙이지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또한 경연(經筵)을 열어 민심을 전달하고 정치적 안건에 대해 관록 있는 신하의 의견을 수용하는 정치협의 기구가 되어야 한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자기 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와의 선린(善隣)에 대해서도 깊고 넓게 알아야 한다. 상국(上國)은 말 할 것도 없고 방국(邦國)과의 무역을 경제적 특혜를 베풀어야 한다. 남북통일은 외국 군대의 연합군을 끌어들이지 말고 자주적인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이와 같이 나라일이 산적한데 조정이 사분오열되고 백성들까지 동요하면 이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오랑캐들에게 침략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유교의 치국론에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하려는 자에게 수신제가(修身齊家)보다 먼저 요구한 것이 ‘격물치지 성의정심(格物致知 誠意正心)’이었다. 사물을 탐구해 앎을 얻으며, 그 앎으로 뜻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향후 조정 대신의 임명은 수신제가를 갖춘 덕망이 높은 인사를 천거(薦擧)하여 등용출사(登用出仕) 시켜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앞서 민심 다스리기에 힘을 모으고 백성들은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 생업에 정진함이 나라 발전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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