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런 산중에 뭔 사람들이 이렇게 생겼습니까?”

“빚에 시달리다 도망칠 재주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지요.”

“하필이면 이런 깊은 곳까지…….”

“여북하면 이런 고랑탱이까지 도망쳐와 두더지처럼 살겄소?”

양주동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에서 살다 도망친 유민들이었다. 각기 사정은 달랐지만 원인은 한 가지였다. 그것은 가난이었다. 마굉필 또한 마찬가지였다.

“변변한 땅뙈기도 없는 벽촌이라 고생이 자심하겠소?”

“그래도 토호놈들 등살에 시달리는 것 보단 맘 편해서 백 번 낫소!”

마굉필이는 죽어서라도 자신이 토호에게 당한 것을 갚겠다며 이를 갈았다.

“참, 큰일이오. 가는 곳곳마다 힘든 사람들만 생겨나니…….”

“가진 놈들이 풀어놔야 없는 놈도 그런대로 살 수 있는데, 외려 가진 놈이 더 채우려고 눈이 벌거니 없는 놈은 죽어날 수밖에 더 있겠소?”

“그래, 마형은 예서 뭘 하우?”

“이런 고랑탱이서 뭘 할게 있겠수, 뻔한지. 약초도 캐고, 나물도 뜯고, 나무도 하고, 겨울엔 짐승도 잡고……, 닥치는 대로 몸뚱아리를 놀려도 풀칠도 어렵다우.”

“마형! 갈무리 해놓은 물건들이 있소?”

“지난 가을에 갈무리해 둔 약초하고 겨우내 잡은 짐승 가죽이 좀 있소.”

“그럼, 그걸 내게 넘겨주시오. 내 후하게 금을 쳐드리리다.”

“이런 산골에서 돈이 뭐 필요 있겠소. 양식이나 좀 바꿔 주시우! 어쨌든 지나가는 길손이라도 동네가 꽉 차니 푸근해서 좋소!”

“마형 덕분에 우리가 오늘 큰 곤경에서 벗어났소! 정말 고맙소!”

봉화수가 마굉필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이튿날, 봉화수는 마을사람들과 마굉필에게 후사를 했다. 어제 사람들이 봉화수 일행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아둔 물건을 후한 값을 쳐서 곡물과 교환을 하고 양주동을 떠났다.

“마형, 북진에 오면 여각에 와 날 찾으시우!”

“봉형, 고맙소! 내 꼭 한번 가리다.”

오늘은 장회나루까지 가서 뱃길을 통해 북진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양주동에서 장회까지는 하루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워낙에 어제의 강행군으로 모두들 지쳐있는 까닭에 오늘도 온 하루해를 다 써야 장회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회에서 북진은 육로로는 오 마장이 넘었고, 물길로는 한 마장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육로로 가면 중간에 하루를 더 지체해야했다. 오늘 중으로 북진에 도착하려면 천상 배를 이용해야 했다.

“오슬아, 넌 먼저 떠나서 대행수님께 장회로 큰 배 두 척을 보내달라고 하거라. 그리고 장회 임 객주한테 영춘 심 객주 어른 배를 내가 갈 때까지 장회 나루에 잡아놓으라고 전하거라.”

봉화수는 상단이 양주동을 출발하기에 앞서 오슬이를 먼저 북진으로 보냈다.

봉화수 상단이 단지실, 갈문이, 대전, 양당골, 수청거리, 다느실, 조풀막, 벌말을 거쳐 해동갑을 하며 걸어 장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나루에는 북진에서 올라온 배와 영춘에서 각 나루에서 객주들의 물산들을 싣고 내려온 심 객주 배가 봉화수 상단을 기다리며 정박해 있었다.

“야아! 대단하구나!”

“화수야, 고생 많았겠다.”

나루에서 봉화수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장회객주 임구학과 영춘객주 심봉수 어른이 줄줄이 행렬을 이루며 내려오는 영남 상인들과 마소를 보며 봉화수를 격려했다.

“자, 어서들 배에 오르시오! 어둡기 전에 북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하오!”

영춘 심봉수 객주가 일행들을 재촉했다.

배가 거북이 같은 구담봉을 돌아 대나무처럼 뻗은 옥순봉 앞에 들어서자 황금빛 노을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강물과 배와 사람들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뱃전에서 노을에 물든 강물과 옥순봉을 구경하던 영남 사람들이 환상적인 풍광에 말을 잊고 탄성만 질러댔다. 옥순봉을 지나 한 구비만 물길을 돌면 북진나루였다. 멀리 북진나루가 어스름 속에서 어렴풋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나루터에서 봉화수 일행이 탄 배를 기다리고 있던 북진여각 사람들도 반가움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강심을 따라 내려가던 배가 바른편으로 뱃머리를 틀며 노을빛 너울거리는 강물 위를 미끄러지며 북진나루로 서서히 들어섰다.

그러나 난장이 열리기 전까지 올라오기로 약조했던 경강상인 유필주가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북진난장은 성시를 이룰 수 없었다. 해는 비봉산 너머로 떨어지고, 이미 뱃길은 끊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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