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형님!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제가 먼저 내려가 사람들을 데리고 올 테니 최대로 서둘러 한 발짝이라도 더 내려오도록 하세요!”

오슬이가 말을 마치고는 비호같이 산길을 내려갔다.

“지금부터는 앞뒤 사람들 사이를 바싹 붙이고 각자 짐에서 소리 나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 들고 걸음을 서두르시오!”

봉화수가 상단 사람들에게 최대한 빨리 걸을 것을 재촉했다.

아직도 삼월이라 해꼬리는 짧았고 산중에 떨어지는 해는 꽁지가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해는 산 너머로 떨어졌고 어스름도 없이 금세 어둠이 밀려들었다.

“자, 이제부터는 최대한 크게 소리를 내며 내려가시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가진 것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산짐승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발자국 소리만 들리던 산길이 갑자기 난장판처럼 시끄러워졌다. 달빛이 간간이 숲 사이를 뚫고 길에 스며들었지만, 길은 어둠 속에 묻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힘은 배로 들었다. 어둠과 힘에 겨워 상단 행렬은 점점 느려졌다.

“호랭이한테 물려가더라도 이젠 더 이상 못 걷겠소!”

“차라리 그만 여기서 밤을 새웁시다!”

어둠과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내려갑시다!”

봉화수가 소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길도 없는 험한 산길을 종일 걸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한 사람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무리 독려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때 멀지않은 산 아래쪽에서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숲 사이로 불빛이 언뜻언뜻 보였다. 흡사 반딧불이처럼 불빛 서너 개가 어둠 속에 갇혀있는 상단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와아!”

불빛을 발견한 상단 사람들이 저마다 물건을 두드리며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형님! 괜찮수?”

어둠을 뚫고 오슬이가 나타났다.

“한두 식경은 지나야 올 줄 알았더니 일찍 왔구나!”

“도기로 내려가던 중에 다행히 양주동에 민가가 서너 채 생겼더라구요.”

양주동은 마을이 아니라 문수봉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 가장자리에 있는 구릉지였다. 경치는 빼어났지만 문수봉 아래 첫 마을인 도기리에서도 한 식경은 올라와야 하는 외진 곳이어서 약초를 캐는 심마니나 나무꾼들이 잠시 쉬거나 요기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산중이라 논은 한 뼘도 없고 나무를 베고 불을 놓아 일궈놓은 화전뙈기만 비탈에 있을 뿐이었다. 농번기가 되면 도기에서 한철 농사를 짓기 위해 올라와 가을걷이가 끝나면 내려가는 기러기 농군들이 지어놓은 움막이나 심마니들이 만들어 놓은 움막, 겨울에 사냥꾼들이나 나뭇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움집 서너 채가 고작이었다. 근래에 이쪽으로 장사를 나왔던 등짐장수들로부터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몇몇 살기는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곳에 민가가 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더구나 산중 농사는 철이 늦어 아직도 농번기가 시작되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 데 벌써 기러기 농군들이 올라와 기거를 할 리도 없었다. 어쨌든 어둠 속에 갇혀 옴짝달짝도 못하던 봉화수 상단은 양주동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횃불을 따라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자,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지내고 갑시다!”

양주동에 도착하자 봉화수가 지칠대로 지친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저러나 저 마소를 다 어쩐다냐?”

봉화수 일행이 산중에서 어둠에 갇혀있을 때 꽹과리를 두들기며 올라왔던 사내였다.

“마소를 어쩌다니요?”

“건천이나 다름 없는 이런 건천에 두면 호랭이가 얼씨구나 좋아할 것 아니우?”

“그럼 어째야 되겠소?”

“여기도 사람들이 불어나서 빈 움막도 없고, 울 안에 최대한 집어넣고 나머지는 한데 모아 묶어놓고 번을 서야쥬.”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방문 앞에는 기다란 갈대를 엮어 방문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자주 나타나는 호랑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사내가 마을사람들에게 봉화수 일행을 나눠 집집마다 할당을 했다. 그리고 울 안으로 들여보내지 못한 마소들을 한군데로 모아 묶어놓고 군데군데 화톳불을 피웠다.

“고맙소! 아깐 경향이 없어 인사도 못했소. 난 봉화수라 하오!”

한숨을 돌리고 난 봉화수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마굉필이요.”

서른이 조금 넘어 보이는 마굉필은 다부진 인상이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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