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여각으로 연통을 띄워 동몽회원들을 불러들여 쓸어버려도 되겠지만 황강의 동태도 모르고 있는 터에 무턱대고 연통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 북진에서도 난장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을 터에 많은 인원을 미륵리로 동원하면 난장 준비에 차질을 미칠 것은 당연했다. 어찌하든 이쪽 문제는 봉화수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난장을 틀 날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니 봉화수는 한밤중이라도 부득불 오슬이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이미 하늘재가 막혔습니다!”

밤새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를 다녀온 오슬이의 말에 의하면 황강 송만중의 패거리들이 재 아래 길목을 지킨 채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늘재로는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었다. 봉화수는 막막했다. 북진을 떠나올 때 당부를 하던 대행수 최풍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묘수가 없었다.

“오슬아, 그들은 얼마나 되겠더냐?”

“언뜻 봐도 장사꾼들과 패거리들이 쉰 명은 족히 되 보였소!”

놈들이 하늘재 밑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벌써 무슨 낌새를 차리고 있는 듯했다.

“으흠!”

봉화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봉화수 일행은 불과 여덟 명에 불과했다. 그 인원으로 그들과 맞붙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당치도 않는 일이었다. 더구나 선매해 놓은 물산들까지 지켜가며 그들을 뚫고 간다는 것은 호랑이 입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피해 하늘재보다 더 아랫쪽에 있는 새재를 넘는 것도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었다. 새재를 지키는 군졸들의 행패도 그러했지만 설사 넘는다고 해도 청풍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보를 거쳐야 하는 데 거기 또한 황강놈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눈을 피하는 길은 고사리에서 연풍을 거쳐 칠성으로 해서 괴산으로 빠져 먼 길을 돌거나, 수주팔경을 타고 달래강을 이용해 뱃길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이 있지만 북진에서 남한강을 타고 올라와 다시 달래강을 타고 지류를 오르는 뱃길이 멀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돌면 난장에 맞춰 북진에 도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하나는 새재를 넘어 연풍에서 장연을 통해 목도를 지나 노루재를 넘으면 곧바로 황강 아래 살미가 나오는 데 그 길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기도 했다. 황강에서는 설마 자신들의 본거지를 뚫고 지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난장을 망치게 되는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봉화수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오슬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하늘재를 넘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겠다. 너는 우리가 사흘 뒤 모든 짐꾼들을 이끌고 하늘재를 넘는다고 소문을 흘리고 오너라!”

밤새 머리를 짜던 봉화수가 오슬이에게 명령했다.

오슬이가 또다시 미륵리 주막거리로 넘어가고 봉화수도 나머지 일행들을 풀어 문경에서 하늘재를 넘는 장사꾼들이나 행인들에게 북진에서 온 장사꾼들이 영남 물산들을 모두 도거리하고 사흘 뒤 하늘재를 넘을 것이란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오슬이도 미륵리 주막집 주변을 돌며 봉화수가 시킨 대로 소문을 흘리고 다녔다.

미륵리 주막거리에서는 황강 패거리들이 떠도는 소문을 듣고 봉화수 일행들이 고개를 넘어오기만 벼르고 있었다.

“쥐새끼같은 놈들! 우리를 내치고도 모자라 남의 상권까지 침을 발러!”

“그러게 말여, 남에 장사를 망쳐도 유분수지.”

“전번에는 무심코 넋 놓고 있다 당했지만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주자!”

“야, 놈들을 치러 당장 넘어 가자!”

황강 패거리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그럴 필요 없다! 소문을 들으니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곧 이리로 넘어올 모양이여. 북진으로 가려면 길은 외통수여. 그러니 너희들은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눈깔 똑바로 뜨고 여기만 지키면 돼. 술 처먹고 해롱거리지 말고 눈깔에 불을 키고 지키고 있다가 놈들을 덮쳐야 한다!”

황강 패거리들 중 우두머리인 듯한 칼눈이 수하들을 독려했다.

“형님! 주막에 떠도는 말로는 북진 패거리가 쉰 명도 넘는다는 데 우리도 인원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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